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808_0002842485
이 기사를 보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내 의지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밧줄에 묶여서 질질 끌려온 것도 아니니 왜 남편의 역이민 선택에 가만히 휩쓸렸는지 4년이 지난 지금,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야간 근무를 했다. 영국은 안 그래도 해가 없는 나라인데 그걸 수 년을 하다보니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어로는 S.A.D라고 한다. (Seasonal affective disorder) 본인은 모르지만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했고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절친의 자살과 코로나가 한꺼번에 터지고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성정이 온순하고 나약한 남편은 해외에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역이민을 결심하게 된다.
코로나로 인한 사재기로 마트에 아예 밀가루와 쌀이 없는 시절이었다. '한국에 갈까?'가 아니었다. '한국에 갈 거니까 준비해'였다. 나는 위 기사 속 역이민 요인인 음식, 세금, 언어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우울한 남편과 이 공간에 더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기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도 선뜻 알겠다고 했던 것 같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다섯 살을 데리고 그렇게 한국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아이가 그랬다는 흔적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국어를 잘한다. 따로 학습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몇 학년 후의 국어문제집을 알아서 풀 정도이니까.
자,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해외에서 살다온 사람임을 알리가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지금 이 곳에서 살고 있는지를 묻는 시간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국에서는 겉만 보고는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이 없었다. 왜 이 가족이 지난 십년 동안 한국에서 생긴 굵직/소소한 사건사고들을 자세히 모르고 있는지, 왜 그때 새로 생겼다는 여러 장소들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하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2G폰을 쓰던 때에 결혼이민을 갔다. 지금도 폰에는 한국인들이 당연히 사용하는 쿠팡, 당근 따위가 없다. 그러니 이 사람들 사기꾼 아니야, 거길 왜 몰라, 그걸 왜 몰라, 싶은 상대방의 눈빛이 읽히면 그제야 등판하는 말. '사실은 저희가 해외 생활을 하다 와서..' 그리고 이어지는 뻔한 반응은 '아~ 그래서 그랬구나'이다. 문제는 그 다음 질문인데 그게 바로 지금 이 글의 제목이 된 그 질문이다.
'다시 안 가세요?'
비슷하게는 '다시 가실 생각은 없으세요?' '그러면 조금 계시다가 다시 가셔야겠네요.'등이 있다. 요즘 같으면 다시 간다고 생각만 해도 울렁거린다. 두려운 것이다.
올해부터 시골생활을 하면서 대답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보통의 스토리텔링은 '도시 생활에 찌든 직장인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에 들어와 농경생활이나 시골카페를 운영하며 살아간다'인데, 우리는 서울에서 온 것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농경생활도 하지 않고 카페도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쟤넨 뭐야.'이다.
남편은 모르지만 이럴 때 나는 잠깐 남편을 팔아버린다. '남편이 우울증이 심했어서 좀 조용히 살려고요' 그러면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시골에서 외부인? 외지인? 타지인? 으로 살다보면 왜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반드시 온다.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받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보면 다시 돌아오는 그 질문. '다시 안 가세요?'
정답은 없다. 우리가 역이민을 하게 될 줄 알았던가. 아니다. 언젠간 다시 간다는 가정하에 계획을 세울 순 있겠다. 다만 이것은 역역이민이 아니라 그냥 이사 개념이 되겠지. 이사가 결정되면 날짜가 지난 영주권을 살려야 하고, 만료된 아이 영국 여권을 살려야 하고, 복직 신청을 해야 하고, 집을 구해야 하며 학교를 알아봐야 한다.
벌써 어지럽다. 당분간은 시골 생활에 안주하면 안 될까. 다시 가더라도 그때는 남편이 '영국에 갈 거니까 준비해'가 아니라 '영국에 갈까'로 나긋하게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오는 게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의 밤송이가 아직 덜 익었는데 툭툭 떨어지기도 하고 고추잠자리가 모기를 잡아 먹으러 윙윙 날아다닌다. 어떤 잠자리는 너무 커서 드론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다시 안 가냐고요? 네, 한국하면 가을인데 지금은 여기 있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