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알구나?

근데 모르는구나? 알구나가 아닌 걸.

by Aeon Park

해외 생활을 10년 정도 했어도 한인이 많이 사는 동네가 아니었기에 한국어로 대화할 일은 몇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이벤트였다. 남편과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아니다, 제외해도 될 것 같다. 어른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고 배울 생각도 없는 상태로 유학을 한 바람에 특정 수준의 한국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니까.

동네엄마모임의 유일한 아시안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저 멀리 다른 동네에 있는 한인 엄마들과 만나거나 런던 여행 온 김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말고는 한국어로 시원하게 대화를 하지 못하다가 2020년 여름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 표준어의 말투나 유행어가 많이 달라진 것은 느끼지 못했지만 (90년대 방송이나 00년대 방송을 보면 꼭 수십년이 지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말투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어, 이상한데? 라고 느낀 말이 하나 있다. 어린이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이 '는'을 넣어야 할 자리에 '는'을 넣지 않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구나'를 '사랑하구나'로. 몇 년을 그 현상을 지켜보다가 방송 원고에 쓰기도 했다. 2023년 9월 초에 방송되었던 라디오 우리말나들이 원고의 일부를 보자.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안주흽니다. 요즘 ‘아는구나’를 ‘알구나’로 잘못 줄여 쓰는 일이 있는데요, ‘알다’처럼 동사 어간 뒤에는 어미 ‘는구나’가 붙습니다. 그래서 ‘알구나’가 아니라 ‘아는구나’로 쓰죠? 형용사 어간 뒤에는 어미 ‘구나’가 맞습니다. ‘예쁘다’ 뒤에 ‘구나’를 붙여 ‘예쁘구나’는 맞지만 동사 ‘알다’ 뒤에 ‘구나’를 붙인 ‘알구나’는 틀립니다.



이때가 2023년이었고 얼마나 많은 청취자 분들이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다. 이후에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마저 (20대 후반 남성) 이 말을 잘못 쓰는 걸 자주 들었고 엊그제 뉴스 인터뷰에서 본 귀여운 어린이도 이렇게 잘못 말하고 있었다.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가나다에도 이거에 대한 문의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먹구나, 가구나'는 틀린 표현인가요?> 따위의 질문들. <먹는구나, 가는구나>를 처음부터 배우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줄여서 써도 되는 것인지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먹구나, 가구나'는 바르지 않고 '먹는구나, 가는구나'가 맞는 표현이다.


3년 정도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방송을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다. 청취자 분들은 잘 못 느끼실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계절 안에 똑같은 소재로 다시 방송하는 일은 없다. 담당 피디님이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방송사에서 그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내가 혼자 그런 기준을 세우고 꾸준히 지키고 있다. 조금 더 다양한 소재의 방송을 하고 싶어서. 사계절이 여러 번 지나갔으니 이건 다시 해도 되겠다. 어쩌면 매년 했어야 할 아이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막아야겠다. 청취자 여러분은 '아, 우리말 박 작가가 이걸 막구나'가 아니라 '아, 우리말 박 작가가 이걸 막는구나'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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