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공주의 탄생

로체스터에서 만난 엄마들

by Aeon Park

킹스턴(Kingson upon Thames)에 살 때는 아이가 없었고, 이셔(Esher)에 살 때는 아이가 누워만 있는 신생아라 다른 엄마들을 함께 만날 큰 필요성을 못 느꼈다. 로체스터(Rochester)로 이사온 뒤로는 아이가 살짝 걷거나 말도 시작하고 또 다른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여러 지역 모임을 나가보기로 했다.


월요일, 금요일 - 로체스터 도서관 Baby bounce and rhyme

한국에서 아이를 낳거나 키워보지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영국에는 지역 도서관마다 아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어른 도서관과 아이 도서관이 구분되어있고 어른 도서관 카드로 책을 빌려 정해진 시간 안에 반납하지 못하면 약간의 벌금을 내야하지만 아이 도서관 카드로 빌린 책들은 늦어도 벌금을 내지는 않는다. (지역마다 다른 지는 모르겠다. 로체스터는 안 낸다.) 그걸 악용하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아이를 키워보면 아이가 그 빌어먹을 아니 빌려먹은 책을 도대체 어디에 숨겨놨는지 알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재활용 더미 안에서 겨우 찾았다는 엄마, 3년 뒤에 신발장 안에서 찾았다는 엄마, 접어놓은 수건 사이에서 찾았다는 엄마, 참 다양하다. 도서관 카드도 마찬가지다. 어른 카드는 잃어버렸을 때 3파운드를 내야하지만 어린이 카드 재발급은 무료이다. 한 카드로 30권의 책을 무료로 빌릴 수 있고 아이가 셋이라면 90권의 책을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도서관에서 아기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너무 큰 아이들이 가기엔 무리가 있는데 주로 목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부터 3살까지가 적당해보였다. 도서관 사서들이 친근한 동요 목소리를 장착하고 30분 동안 동요를 불러주는 건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영어 동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내가 가사를 몰라 어버버거리자 프린트를 해서 주기도 했다. 친절함에 이방인 감격이 +1 늘어났습니다. 30분 내내 옆 자리에 앉아서 너희 아이 이름은 뭐냐, 몇 살이냐, 어디서 낳았냐, 등등의 간단한 기본 인사를 나누었던 한 엄마가 프로그램이 끝나자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야 너무 고맙지, 덥석 내민 손을 잡고 동네 커피숍으로 갔다.

에스토니아에서 온 카야 엄마, 카트리나였다. 카야는 우리 아이와 태어난 년도는 달랐지만 학교는 같이 다니게 될 나이였다. (영국은 9월을 기준으로 학기가 달라져서 그렇다. 그래서 같은 나이여도 학년이 다를 수 있다.) 남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고 이 부부가 영국에 사는 이유는 남편의 전부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란다. 카트리나는 로체스터 성당 홍보팀에서 일하는 워킹맘이었다. 출산 휴가 중이라서 시간이 많고 로체스터에 산 시간도 적지 않지만 바쁘게 일하느라 동네 친구를 만들 시간이 없었다.

나도 내 소개를 했다. 나는 평생 한국에서만 살다가 남편을 만나서 영국에 오게 되었고 다른 지역에 살다가 여기로 이사온 지 몇 주 안 되었다고. 카트리나는 NCT(National Childbirth Trust 1956년부터 시작한 단체로, 초보맘들을 돕는다)에서 만난 사람 중에 일본인이 있다고, 지금 그녀가 일본에 있으니 나중에 소개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본인 카츠미를 만났다. 미도리 엄마 카츠미도 워킹맘으로 출산 휴가 중이지만 평소에는 런던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었다. 영국인 남편을 만나 로체스터에 산 지 몇 년 되었다고 했다. 로체스터에서 한국인을 아니 동양인을 처음 본다면서 반갑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 뒤에 카츠미 옆옆집으로 다른 일본인이 이사를 왔다.

그렇게 히로를 만났다. 윌리엄 엄마 히로도 영국인 남편을 만나서 여기 살게 되었고 청일점 윌리엄도 카야, 미도리, 우리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다.


수요일 - 로체스터 King's School Toddler Time

로체스터에 있는 사립학교 킹스 스쿨에서는 수요일마다 토들러 타임이라는 놀이방을 운영한다. 4살 이전 아이들에게 적합하고 같은 학교에 소속되어있는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와서 아이들과 대화도 나누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른다. 어른들에게는 간단한 쿠키와 티/커피가 제공되고 아이들에게도 과일과 여러 마실거리들을 준다. 2파운드의 적은 참여비로 아이에게는 여러 경험을, 어른들에게는 정보 공유의 기회와 커피까지 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여기서 모야를 만났다. 모야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다. 비리디아나, 발레리아, 버지니아. 모두 한 살 터울이니 지난 3년 동안 임신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멕시코계 미국인인 모야도 영국인 남편을 만나 다른 지역에 살다가 로체스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모야는 라틴어 선생님인데 그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느라 일을 그만두었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모야가 특히 좋았다. 서로 사이가 좋은 아이가 셋이나 있는 것도 좋았고 (나는 북적거리며 사는 것이 꿈이었다. 결혼 반대로 방문할 시댁도 시댁 가족들도 없으니 폭망했지만.) 아직도 잘 안 들리는 영국 영어가 아닌 나 같은 한국인들에게 더 친근한 미국 영어를 쓰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알고보니 우리 집에서 1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모야는 이 장소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다른 엄마를 만났다. 이자벨라의 엄마 마리아를 나는 모야를 통해 만났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역시나 영국인 남편을 만나 여기에 살고 있는 마리아는 이 그룹에서 또 다른 베네수엘라 엄마 줄리를 만났다. 줄리의 남편도 역시 영국인이다.

어느 날 이 놀이방에서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온 영국인 엄마가 있다. 베산 엄마인 젬마이다. 젬마는 나중에 알고보니 친정아버지가 이혼 후에 한국인과 재혼을 하여 새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 몇 가지 간단한 한국어를 할 줄 알았고 알아들었다. 빨리 먹어. 안녕. 감사합니다. 정말 간단한 것들.


이밖에도 월요일과 화요일에 각각 다른 교회에서 진행하는 놀이방, 수요일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다른 Toddler shake 프로그램, 목요일에 동네 뮤지엄에서 진행하는 storytime 등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때 뿐, 한 두시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면 그만이었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 학교 친구가 생기고 다른 학부모들과 소통하느라 바쁘다고들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 취학 전이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듯 살아온 나에게 엄청나게 순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은 지나치게 심심했다.


또 다른 수요일이 되었다. 한 살짜리 아이와의 반복되는 지루한 일주일 일과 중 가장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나고 다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아이들을 붙잡아 외투를 입히고 유아차 보관소에서 유아차를 꺼내 강제로 앉히는 난리를 치는 통에 나는 아이가 셋인 모야에게 말했다.


"우리집에 갈래?"


마치 기다리던 회사에 합격통지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모야가 말했다.

"Sure!"


그 순간이 모야에게도 너무 기쁜 순간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영국의 아이들은 대체로 저녁 7시면 잠이 든다. 이 놀이방은 3시에 끝이 나고 모야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퇴근해서 도와주기 전까지 오롯이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다른 아이의 집에 가서 다른 아이의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 아닐까.


모야를 초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모야처럼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마리아가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모야에게 "네 친구도 초대하고 싶으면 같이 가도 돼."라고 말했다. 서로 얼굴은 알지만 갑자기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간다는 게 무서울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친구랑 같이 오면 좀 덜하지 않을까 싶어서.


모야에 마리아까지 초대하고 있는 내 모습을 젬마가 지켜보고 있었다. '젬마, 우리는 지금 우리집으로 갈 건데 너도 오고 싶으면 와도 돼."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점점 일이 아니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이때는 젬마의 새어머니가 한국인인지 모르고 있을 때 였고 심지어 젬마가 둘째를 임신 중인 것도 몰랐다. 젬마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고 내가 어디라고 하자 '아 나 거기 살았었어, 거기서 살다가 지금 집으로 이사간 거야.'라고 했다. 그래서 젬마는 부담이 덜했을 것 같다. 갑자기 모르는 고스트하우스에 가는 게 아니라 이미 아는 건물이니까.


갑자기 우리 플랏에 (영국에서는 아파트를 플랏이라고 한다) 4명의 엄마와 6명의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들이기도 한 사람들을 내가 초대했다. 아마도 우리집이 이 중에서 가장 좁을 텐데 그래도 좋다고 아이들은 어울려 놀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집이 가장 좁은 집은 아니었다. 그 가장 좁은 집에서도 이 구성으로 비집고 들어가 3년을 다함께 어울려 놀았다.) 집에 와서야 서로 제대로 된 풀네임을 교환하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젬마가 나서서 그룹채팅방도 만들었다. 몇 달 뒤 젬마가 둘째를 출산하면서 자연스럽게 칠공주가 되었다. 모두 딸이었고 일곱 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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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미국인, 베네수엘라인, 한국인. 영어를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모임은 내가 시작했다. 종종 내가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하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연희가 몇 주 동안 지켜보다가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어느 날 자기 집으로 스카우트했잖아!'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칠공주 모임이 없었으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을지 모르겠다고 되뇐다. 이날을 계기로 각자 집에 돌아가면서 놀았고 공원에서도 만나 놀고 차 타고 다른 데 가서도 놀고 그랬다. 아빠들도 만났다. 다 같이 파티도 했다. 아이들 없이 엄마들끼리 밤에 만나 술도 마시게 되었다. 다시 신 나는 나날들이 시작된 거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칠공주 엄마들을 섭외하여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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