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 School

1,400여년 역사의 영국 왕립 학교

by Aeon Park

칠공주와 3년을 거의 매일 만났다. 다같이도 만나고 따로도 만나고. 시간은 흐른다. 아이가 셋인 모야네는 버밍엄으로 이사를 갔다. 런던 웨스터민스터 학교의 교감이던 남편이 버밍엄의 다른 사립학교로 가게 되어 내린 결정이었다. 모야가 빠진다는 건 아이 셋이 빠진다는 이야기다. 사공주? 어색하다. 시기와 맞물려 칠공주 아이들이 기관에 정기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영국은 너서리(Nursery)나 프리스쿨(Pre-school)을 취학 전에 미리 보낼 수 있다. 안 보내도 상관없지만 웬만해선 정부에서 일주일에 15시간에서 30시간을 무료 지원해주는데 안 보낼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기관에 다녔다. 매일 칠공주하고만 어울릴 수도 없는 일, 혹시나 아이 시야가 좁아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시작되어 나는 아이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다니게 된 것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다른 아이들도 있다. 아는 사람들하고만 안전하게 만날 수가 없는 게 인생이니까.


칠공주 중에 영국인 엄마의 딸인 베산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지만 베산은 4월 생이라 리셉션(Reception)에 입학할 나이였다. 같은 해 9월에 태어난 우리 아이는 그 이전 단계인 너서리나 프리스쿨을 다녀야했다. 리셉션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등교해야 하기 때문에 이제 예전처럼 자주 만나서 놀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하교 뒤에는 자주 만났다.)


베산이 9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학교는 공립 중에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이다. 우리 아이가 리셉션에 들어갈 나이였다면 아마도 가장 친한 친구처럼 그 학교로 배정을 받았을 거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아이를 사립학교에 넣고 싶어했다. (인정해라, 내가 아니고 당신이 보내고 싶어한 거다.) 아이 아빠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반대했다.


아이 아빠는 경찰이다. 한글로 쓰니까 어색하다. 여기서 남편 뭐하냐는 질문에 늘 My husband is a police officer. 라고만 대답하다가 여기에 글 쓰면서 한글로 경찰이라고 하니까 괜히 어색하다. 암튼 일하면서 별의별 꼬라지를 다 보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나 같은 방송작가들도 별의별 꼬라지를 다 보면서 일하지만 경찰들은 차원이 다르다. 마약중독자, 사기꾼, 총기소지자, 살인자, 강간범 등등 내가 감히 나도 별별 일 다 겪으면서 살았어, 이거 왜 이래? 라고 말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요즘 어린이들이 어떤지 청소년들이 어떤지 그들의 부모들은 어떤지 최악의 상황만 본다. 아니 보아왔다. 공립학교는 아무래도 별의별 사람들이 주소지를 기준으로 배정받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사립학교는 일단은 돈이 문제라, 어느 정도 최악의 사람들은 거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나의 반박은 이러했다. 아이를 이 나라에서 키울 거라면 이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하고 어릴 때부터 부딪히며 살게 하는 게 맞지 않냐는 거였다. 언제까지 부모가 만들어놓은 울타리에서 살게 할 거냐. (아이가 청소년인 거 같이 들리지만 3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를 받을 거라면 미리 받고 일찍 강해지는 게 낫지 않느냐, 라고 주장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상대는 공무원이다. 안 듣는다.


돈 문제도 있었다. 나는 한국의 방송사에 여전히 원고를 보내는 '현직' 방송작가이지만 원고료를 굳이 영국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 모아두었다가 한국에 갈 때마다 꺼내 쓴다. 맞벌이 같지만 맞벌이가 아닌 구조를 가진 우리집에서 사립학교 학비라니, 영국은 학비가 무료인데 아니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되는데, 왜 굳이 돈을 또(!)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한단 말인가! 다른 사립학교들은 앞서 말한 정부의 15시간 지원 시간을 받아주기도 한다. 학비에서 15시간 어치는 빠지는 건데 아이 아빠가 보내려는 사립학교는 이 지원도 받지 않는 학교였다. 정부 지원 안 받고, 정부에서 짜 주는 커리큘럼도 따르지 않는다. 지원을 안 받으니까 따를 필요도 없다. 자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커리큘럼을 따른다.


가능해. 가능해. 가능하다는 말만 했다. 남편 월급 만으로 보낼 수 있다고, 보내자가 아니라 보낼 테니 그리 아시오, 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학교는 자기가 졸업한 학교였다.


여기선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자기가 나온 학교에 자기 자녀를 보내고 싶다는데 그건 뭔가 건드리면 안 되는 영역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내가 영국 교육에 대해서 뭘 알겠나,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싶어 결국 우리 아이는 아빠가 졸업한 학교에 등록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국에 방문하면 내가 하자는 대로 일정을 채우듯이 옛다, 학교는 네가 정해라 그럼.


28336595_1568371933218578_2422396201678358453_o.jpg 출처 : 킹스 스쿨 페이스북
33403310_1650820638307040_914989391674343424_o.jpg 출처 : 킹스 스쿨 페이스북

여태 어쩌고 저쩌고 말해온 이 학교가 바로 로체스터의 또 하나의 자랑, 킹스 스쿨이다.


604년에 설립, 약 1,4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중 하나이다. 남녀공학이고 3세부터 18세까지의 학생들을 받는다. 아마 많은 한국인 학생들이 거쳐갔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남편 뿐이고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훌륭한 사람이니 이 학교 교육에 대해서 의심이 들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는 9월에 태어나서 같은 학년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되었다. 이듬해 8월에 태어난 아이는 같은 반에서 가장 어린 아이가 되어 부모들을 걱정시키지만 가장 큰 아이가 될 우리 아이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알파벳이나 숫자 등 이미 다 아는 걸 또 반복해야 하고 같은 반의 어린 아이들이 하는 행동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기저귀를 떼었지만 기저귀를 찬 아이들을 보면서 또 다시 기저귀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걱정도 나중이다. 들어가야 걱정을 할 거 아닌가. 입학 전에 면담이 있었다. 엄마들끼리는 '은근한 테스트'라고 하는데 아이가 지금 어떤 수준인지 선생님들이 함께 놀면서 미리 알아보는 시간이랄까, 이 시간을 갖고 나서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왔다. (이메일이 아니라 종이 편지가 왔다. 영국에서는 아직도 이메일보다 우표 붙인 편지를 선호하는 곳이 적지 않다.)


'아이가 자신감이 있고 그날 너서리에 있던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즐겼습니다. 야외활동에서는 정글짐을 올라갈 줄 알았으며 다른 아이들과 나누며 놀 줄도 알았습니다. 금세 친해져 헤어질 때 굿바이,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조용하지만 유능했고 특히 퍼즐을 좋아했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이야기할 줄 알았으며 숫자 15까지 자신감있게 세었습니다. 12 조각의 퍼즐도 독립적으로 완성했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릴 줄도 알았습니다. 연필은 오른손으로 쥐며 패턴을 정확하게 따라 그릴 줄 알았습니다. 저희는 너서리에 OO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조만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래서 합격이라는 거야? 참 말 많다, 누가 영국인 아니랄까봐. 아이는 3살이었다. 3살 아이에게 무슨 평가를 한다는 건지, 원.


여건이 허락된다면 당연히 이 학교를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로체스터 엄마들 사이에서 어쩌다보니 나 혼자만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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