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eon Nov 16. 2020

네가 유치원에서 나쁜 말을 들었어

11.2020

우리 가족은 이민자 가족이었어. 

시민권자인 남편도, 영주권자인 나도, 이중국적자인 너도, 

영국에서는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네가 한국에서 듣게 되었어. 


"너희 나라로 돌아가."



한국 나이 겨우 7세가 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난 충격이었어. 만약 네가 다니던 영국 사립 학교에서 이런 말을 들은 거라면 아마 그 아이는 퇴학을 당했을 지도 몰라.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매일 매일이 챌린지야. 그리고 네가 어느 날 유치원 친구가 그 말을 너에게 했다고 했을 때가 아마 가장 챌린지였던 것 같아. 


부산 여행을 앞두고 있던 화요일 저녁, 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어. 


"엄마, 이건 오늘 있었던 일은 아니고 예전에 있었던 일인데, OOO이 나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 영국사람은 영국에 살고 한국사람은 한국에 사는 거래." 


무심코 그렇게 툭 던지고는 잠이 들어버린 너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어. 네가 딱히 상처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아보였는데 원래 넌 울면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니까. 만약 이말을 내가 평소에 들었다면 다음날 아침 바로 유치원에 전화를 했을 텐데, 공교롭게도 우린 내일부터 2박 3일의 부산 여행이 잡혀있고, 이걸 문제 삼으려면 네가 유치원에 가는 날에 전화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 그래서 이 문제를 일단 덮기로 했어.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몇 주가 지났어. 그런데 네가 또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 


"엄마, OOO이 나한테 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 


이번에도 덮으면 너보다 엄마가 더 화가 날 것 같아서 유치원에 이야기를 했어. 그날 저녁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지. 그 남자아이가 그 말을 한 것이 맞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본인은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네가 상처 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고, 네 앞에서 사과를 했고 네가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고 말했어.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이어서 한 말이 있어. 네가 이렇게 말했대. 


"나도 영국에 다시 가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지금은 못 간다고 했어. 네가 자꾸 영국에 가라고 하면, 갈 수 없는데 가라고 하니까 속상해."


그 얘길 듣고 내가 너무 미안했어. 


넌 그 나라에서 태어났고 거기에 모든 네 친구들이 있어. 거기서 다니던 학교가 있고, 네 집도, 네가 직접 꾸민 하늘색 방도 다 거기에 있었는데. 영어가 더 편하고, 한국어가 어눌했지만 몇 개월 동안 한국에 살면서 네 한국어 실력이 느는 걸 보면서 마냥 네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어. 


여러 상황들이 우리 부부를 한국에서 살자고 결정하게 만들었고 어린 너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던 것이 너무 미안해. 거기서 이민자로 살았어도 전혀 차별이라고는 받지 않고 살아왔는데 동네 유치원에서 그런 말을 듣게 해서 너무 미안해. OOO이 정말 나쁘다. 엄마는 그 아이가 미워. 그 아이를 키우는 OOO이 엄마 아빠도 괜히 미워. 


"아니야. OOO은 나쁜 애 아니야." 


맞아. 네 말처럼 나쁜 애는 아니길 바라. 이건 내가 어른이라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에 발끈한 거야. 그동안 그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엄마한테 와서 그랬어. 아마도 너는 그 말 보다는 '갈 수 없는 데를 가라고 한다'는 것이 더 속상했을 거야. 우리가 살다 온 영국은 지금 닫은 곳도 많고 몇 세 이상은 1:1로만 만나야 하고, 몇 명 이상은 만나면 안 되고, 등등 제약이 많아. 우린 지난 봄에 심한 lockdown을 겪으면서 그 경험을 또 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몰라. 한국은 확진자 수가 늘면서 주변을 조여오는 느낌이라고 하지만 영국은 사망자 수가 그랬어. 사망자가 점점 주변으로 조여오는 느낌이었어. 네 친구 테디의 할머니도 코로나로 돌아가셨거든.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네 선택은 아니었지만 지난 5개월 동안 한국에서 함께 잘 살아줘서 고마워. 무더운 한국의 여름 속에서 하필이면 고장난 에어컨 때문에 사람도 부르지 못하고 2주동안 자가격리를 잘 버텨준 것도 고마워. 어른인 나도 아팠던 코로나 검사도 잘 받아줘서 고맙고 그 이후에도 면봉으로 자꾸 엄마한테 코로나 검사 해준다고 하는 것도 고마워.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