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섯 살 때 처음 동네 교회에 가서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그때 그 교회는 그냥 그야말로 동네 교회였는데
지금은 어마무시한 대형교회가 되어
대한민국 정재계를 쥐었다 풀었다 하는 곳으로
'성장'했다고 해야 할지 '타락'했다고 해야 할지 선택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됐다.
친구가 좋아서, 다섯 살 그때부터 내 종교는 기독교이다.
매주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건 2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요즘도 날라리 신자라는 말을 쓰는지?
분명 종교의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
종교가 늘 함께 해야지, 필요할 때만 갖다 쓰는 건 아니지만
나도 그렇게.. 성장했다고 해야 할지 타락했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됐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천주교라고 한다.
집안에 수녀도 있고 신부도 있고
자기 이름도 천주교 이름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본인도 매주 성당에 나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린 교회도 성당도 아닌 곳에서 결혼을 했다.
아이에게는 우리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성당에 갈 일이 있으면 가고
할머니가 교회에 가자고 하면 쫄래쫄래 따라가는
그런 7살이다 지금.
개인적인 사정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일요일마다 할머니가 아이를 교회에 데려가면
그때가 오롯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여기까지 써놔야 돼!
아이가 오기 전까지 이걸 다 끝내야 돼!
아이가 올 때까지 이 야한/폭력적인/무서운 19금 드라마/영화를 봐야 해!
(49금을 봐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나이에
순수한 어린 아이의 눈을 피해
19금 영상 몰래 보는 우리들 파이팅...)
어느 날 교회에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요한볶음 알아?"
참아야 한다. 이때 웃으면 아이는 더 말하지 않을 거다.
"아..알지. 성경에 있는 거잖아."
"어. 전도사님이 가르쳐줬어. 요한볶음도 있고 누가볶음도 있어."
한국에 들어온 지 2년이 덜 된 우리 아이는 아직 겹받침을 어려워하는데
볶음밥이 복음보다 더 친숙할 테니 그럴 수밖에.
아이의 입에서 '볶음'이 어느 날 소리소문도 없이 '복음'이 되면
너무 아쉬울 거니까
나중에 후훗하며 읽으려고 써 두는 너의 언어.
그냥 가면 아쉬우니 좋아하는 구절도 투척.
요한볶음 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TheGospelaccordingtoJohn
*배경사진은 Canterbury Cathedral 직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