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Dec 05. 2017

안녕, 미컁!

육지에서 절반 #6 마츠야마, 대단한 미컁

물론 <도련님>을 모른다고 해도 마츠야마는 온천으로 알아주는 곳이니 충분히 들러봄 직하다. 일본의 3대 온천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도고온천은 30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며, 항간에는 도고온천 본관 건물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의 무대가 되었다는 말까지 있다. 이 소문은 사실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하는데, 그런 소문이 날 만큼 이 건물이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도고온천 본관은 낮보다는 밤에 훨씬 더 화려하다


간만의 온천욕을 마치고 유카타를 걸친 채 상점가를 따라 쭉 걸어보았다. 에히메 현이 귤로 유명한 동네이다보니 귤을 활용한 먹을 거리나 상품들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본인들이 하나의 소재를 정해 이를 상품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귤도 그냥 귤이 아니라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다양한 종류의 귤들을 만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더욱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귤들 중 내가 알아 볼 수 있는건 감귤과 청귤, 한라봉 정도가 전부였다. 하긴 레드향, 황금향, 천혜향 등 내가 잘 모르는 귤들은 한국에도 이미 산더미. 그런 내가 하물며 일본의 귤을 잘 알리가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잘 몰라도 종류별로 단맛과 신맛의 정도, 그외 부가적인 설명들을 자세히 제공하고 있어 지갑을 여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알고 있던 것은 반가운 마음에, 몰랐던 것은 호기심을 유발하여 어떻게든 구매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또 한번 '역시 일본이다' 싶었다.


상점가를 구경하던 중 계속 눈에 밟히는 녀석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귤을 모델로 한 요 마스코트였다. 이름은 '귤'과 강아지가 '컁컁'하고 짖는 소리에서 본딴 '미컁'으로 귤의 모습을 닮은 강아지다. 귤꽃 모양의 꼬리와 하트를 닮은 코가 매력 포인트라고. 그런데 이 귀여운 녀석이 2011년에 탄생한 후, 지금까지 25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하니 그 위력은 단순히 "귀엽네"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꼭 미컁이 아니어도 일본에 조금만 머물러보면, 여기저기 캐릭터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잘 만든 캐릭터 하나만 있으면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캐릭터들은 너저분한 스캔들을 일으킨다거나 sns에 망언을 늘어놓아 물의를 빚는 일도 없으니 특정 인물을 모델로 쓰는 것보다 관리하기도 훨씬 편하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덕분에 일본의 지자체들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들 고군분투 중이다. 물론 모든 캐릭터들이 미컁처럼 성공하는건 아닌지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망한 캐릭터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점은 함정이다.


미컁 구경은 이쯤 해두고 맥주집에 들렀다. 물이 좋은 곳은 자연히 술도 좋을 수 밖에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동네에도 이 동네 물을 활용한 지역 맥주가 있어 맛보기로 한 것. 저녁 식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배가 차지 않을 만한 간단한 안주거리를 찾다가 "재패니즈 피클"이라는 아리송한 메뉴를 주문했다. 정체는 야채 절임. 맥주보다는 흰 쌀밥에 더 어울릴만한 맛이었는데 막상 짭조름한 오이 한 조각에 맥주 한 모금을 머금어보니 나쁘지 않다. 그렇게 앉아있으니 문득 김치 한 조각에 소주 한 잔을 걸치던 어른들이 떠오른다. 이 맛을 알게 되다니, 나도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 걸까.


<도련님>을 모른다고 해도 마츠야마를 즐기는 데에는 별 상관이 없다고 서두에 말은 했지만 맥주의 이름들 역시도 '소세키 맥주', '도련님 맥주', '마돈나 맥주'(그 놈의 마돈나!) 등 으로 붙어 있는걸 보면 역시 마츠야마는 <도련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네인 듯 싶다. 그러니까 마츠야마에 오기 전엔 꼭 <도련님>을 읽는 걸로!


<도련님>과 관련된 마츠야마 이야기는 이쪽 ▽▼▽

매거진의 이전글 서점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