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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30. 2017

<도련님>의 세상을 거닐다

육지에서 절반 #5 마츠야마,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과 함께

에히메 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츠야마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물론 지금의 마츠야마는 완전히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마츠야마 중에서도 '도고 온천역' 근처에는 100여년 전 <도련님>의 동네가 제법 남아있다. 도고 온천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츠야마 역에서 노면 전차를 타야한다.


<도련님>은 도쿄 태생인 주인공 '도련님'이 마츠야마의 한 중학교 수학 교사가 된 후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칫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뻔한 <도련님>이 재미난 소설로 기억되는 것은 주인공인 '도련님'이 무시당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거짓말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는데에 있다. 그런 그의 눈에 사회는, 그리고 자신의 일터인 중학교는 몹시도 부조리해보인다. 그 부조리함에 대해 화를 내고 싸우고 대들며 벌어지는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덕분에 독자들은 일종의 속 시원함, 그러니까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소세키는 마츠야마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 <도련님>이 담고있는 이야기들이 완전히 허구적인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그저 솔직하고 담백하게 흘러간다. 어렵다거나 복잡하다거나 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 그 때문인지 <도련님>은 동화가 아닌데도 마치 동화처럼 술술 읽히는, 조금은 신기한 소설이었다.


<도련님>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중학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전을 해버렸지만 마츠야마에는 여전히 <도련님>과 관련있는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다. 소설 속에서 도련님이 온천을 마치고 당고를 사먹었다가 학생들에게 지독할 정도로 놀림을 당하고 교장에게는 '교사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하므로 당고집처럼 점잖지 못한 곳에는 가지 말라'는 어이없는 훈계를 듣는 장면이 있는데, 이 동네에선 지금도 그 이야기 속의 당고를 만나볼 수 있어 마치 100년 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갖 상술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도련님>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도련님 당고'가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런 깜찍한 상술에는 못이기는 척 넘어가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실제로 만나본 도련님 당고는 떡이라기보다는 떡 안의 소에 가까운 식감에, 심하게 달지도 않아 먹기에 좋았다. 세 가지 색깔로 알록달록한 모양새도 귀여웠던 기억이다.


도련님이' 성냥갑 같다'고 표현했던 기차 또한 '도련님 열차'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마츠야마 역에서 도고 온천 역으로 넘어올 때 보통은 노면 전차를 타게 되지만, 띠엄띠엄 이 열차도 다니고 있어 운이 좋으면 이 열차를 탈 수도 있는 것 같다.

호빵맨도 도련님 열차를 타고 있다


마츠야마가 <도련님>의 배경으로 알려지면서 도리어 소설 속에는 없는 것이 새로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련님 시계'.


도고 온천역 바로 앞에 위치한 '도련님 시계'는 정시가 되면 2층짜리 시계가 3층으로 변하면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도련님과 주변 인물들이 시계에서 나와 춤을 추는 등의 재롱을 부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정시 즈음되면 시계 앞에 카메라로 무장한 사람들이 나란히 줄을 서는 등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그만한 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법 귀엽긴 하다.


책 속의 세상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꽤 의미있는 경험이다.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따라가는 여행은 이제 너무 흔해졌지만, 책 속의 세상을 따라가는 여행은 여전히 귀하다. 화면에 절로 보여지는 배경이 아니라, 문장 사이에서 내가 찾아낸 풍경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마츠야마를 걷는 내내 길 모퉁이에서 금방이라도 우리의 도련님이 당고를 물고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아 두근거렸다. 다시 한 번 <도련님>을 읽고 싶어졌다.



 <도련님>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는 '마돈나'로 예쁜 외모 덕에 교사들의 관심을 받는 인물이긴 하지만 대사 한 줄 없는 주변인에 불과한데도 마츠야마에서는 마치 여주인공급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도련님과 마돈나는 하등 관계가 없는데 마치 둘 사이에 러브라인이라도 있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해둔 점은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그게 그림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뒀겠지만.


마츠야마 역에서 판매중인 에키벤도 무려 <마돈나 도시락>.. 정작 <도련님 도시락>은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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