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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23. 2017

호빵맨 열차와 호빵맨 도시락

육지에서 절반 #4 마츠야마, 호빵맨 열차와 호빵맨 도시락

"다카마츠를 기반으로 하여 카가와 현을 둘러보자" 하는 생각으로 여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러니 카가와 현이 아닌 곳에는 절대 관심두지 않겠어"! 라는 다짐을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가와 현이건 아니건 그런 것은 행정 구역 상의 구분일 뿐, 여행에 크게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던 중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잠시 카가와 현을 떠나 에히메 현의 마츠야마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다카마츠에서 기차로 2-3시간 정도 거리인 마츠야마. 기왕 탈 기차, 조금 더 재미있게 탈 순 없을까 하여 더 알아보다보니 놀랍게도 호빵맨 열차가 있다. 다카마츠와 마츠야마 자체는 호빵맨과 별 연관이 없지만 근처의 고치 현이 호빵맨의 작가, 야나세 다카시의 고향이기 때문인 듯 했다. 어쩌면 더 넓게 생각해 시코쿠라는 지역 자체를 호빵맨의 고향으로 보는 걸 수도 있겠고. 결국 우리도 호빵맨 열차의 운행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하고, 역 안의 도시락 집에서 호빵맨 에키벤도 예약했다.


일본에서는 도시락 중에서도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도시락들을 '에키벤'이라는 단어로 구분지어 부른다.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에키벤들은 무척이나 인기인데, 그건 그 역의 개성을 담거나 그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하거나 하는 식으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에키벤이 대충 한 끼를 떼우는 용도의 천편일률적인 도시락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으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다양한 에키벤을 맛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는 내용의 만화까지 등장했다. 이 만화의 제목 역시 <에키벤>으로 지금은 조금 사그라 들었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인기였었다.

△ 호빵맨 도시락은 인기가 많아 품절될 때가 많으므로 전날 미리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에키벤을 기차 안에서 먹어도 될까? 정답은 YES.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본인들이면서도 먹는 문제에 있어서는 유독 관대한 것 같기도 하다. 북적거리는 기차역과 밀폐된 기차 안에서 음식 냄새가 나는 것도 사람에 따라선 고역일 수 있는데, 각 역마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에키벤을 개발하고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요 녀석을 타고 이동하다가 중간에 호빵맨 열차로 갈아타는 여정이 되었다.


30여 분 정도를 달렸을까, 드디어 환승!! 앞코가 날렵한 호빵맨 열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열차의 외부뿐 아니라 내부도 호빵맨으로 가득하다. 일본에는 유독 장수하는 캐릭터가 많은데 호빵맨도 그 중 하나다. 1970년대, 배고팠던 시절에 '영웅이라면 일단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태어났다는 호빵맨. 배고팠던 시절은 진작에 지나갔지만 호빵맨은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듯 일본에는 어릴 때 좋아했던 것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좋아할 수 있고, 더 나이가 내 아이와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다. 예전에 비해 키덜트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애도 아니고 뭐 그런걸 좋아해'하는 정서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호빵맨 일색인 열차 안에서 호빵맨 에키벤을 먹었다. 반찬의 종류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 여러모로 어린이 도시락의 느낌이 나지만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책도 조금 읽다보니 어느덧 에히메 현의 마츠야마에 닿았다. 여기도 기차역 가득 호빵맨이다.



호빵맨 열차는 노선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어서 이 때도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다만 이 열차는 근거리를 가는 토롯코 열차. 창문이 없어 바람이 그대로 들이치기 때문에 아주 고속으로는 달릴 수가 없는, 좀 더 관광용 열차라고 보면 된다.

식당 칸은 창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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