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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13. 2017

뜻밖의 안도 타다오

육지에서 절반 #3 다카마츠, 시코쿠무라

오늘은 다카마츠 외곽 지역의 시코쿠무라에 가보기로 했다. 시코쿠무라는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의 집들을 주제로 꾸며진 일종의 민속촌으로, 고토덴 야시마 역에서 10분 정도면 걸어서 갈 수 있다. 고토덴이라 불리는 전철은 짤막한데다가 색깔도 알록달록해 귀여웠는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철컹철컹하며 이동하는 야무진 녀석이었다. 창 밖 풍경을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고토덴 야시마 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한적한 동네였다.


시코쿠무라는 가벼운 숲 속 산책과 함께 시코쿠와 효고 현에서 옮겨온 민가와 산업 시설, 등대 등을 둘러볼 수 있게 꾸며진 장소였다. 그래도 나름 민속촌이라고 해서 복작복작한 분위기이려나 싶었는데, 조용한 산 기슭에 위치해서인지 무척이나 고즈넉했다.


숲 속의 길을 따라 걸으면 다양한 모습의 집들을 만날 수 있다. 집이 위치한 위치, 기후 등에 따라 집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그 차이를 구분하고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 곳에서는 가파른 언덕에 세워진 집, 바닷가 마을에 있던 집, 일반적인 농가의 모습을 한 집,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집 등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재미있었던 곳은 설탕을 만드는 공간이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카가와 현의 설탕은 무척이나 유명하며 덕분에 '와산본'이라는 설탕 과자도 여지껏 제법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지금이야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시절엔 소들이 열심히 톱니바퀴를 돌렸던 것 같다.


산 위쪽에는 등대도 하나 있었는데 본래 여기 있던 것은 아니고 다른 섬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독특한 점은 등대지기가 머물던 집도 몇 채 옮겨와 있었는데 이 집들이 모두 서양식 건축물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시절 등대를 세우는데 필요한 기술들이 서양의 것이었고, 필요시 그 기술자들이 머무를 수 있게 서양식으로 집을 지은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시코쿠무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민속촌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현대 건축물이었다.


특히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는 회색빛 네모난 건물은 예스러운 민속촌의 시간을 갑자기 현대로 돌려놓는 듯, 엄청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 건물은 사실 안도 타다오의 작품. 손을 베일 듯 날카로운 모서리를 뽐내는 회색의 건물은 몹시 인공적이면서도 희안하게 주변의 자연 경관과 무척 잘 어울렸다. 특히 <물의 정원>이라 불리는 바깥쪽 풍경은 장관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이 건물의 정체는 시코쿠무라 설립자의 소장품들을 모아두었다는 시코쿠무라 갤러리. 많지는 않지만 피카소, 르누아르의 그림 등도 내부에 전시되어 있었다.


산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안도 타다오를 만나고 보니 새삼 여행이라는 것이, 더 나아가 삶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낯선 길 위에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긴 하지만, 설령 여행이 아니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늘 낯선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삶은 곧 여행이라는 말이 이런 의미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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