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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11. 2017

나의 세계, 그리고 우동

육지에서 절반 #1 다카마츠, 우동 투어

섬들을 오가는 동안 기점으로 삼은 곳은 다카마츠였다. 다카마츠 항 근처에도 세토우치 예술제에 등록된 작품들이 몇 있지만, 사실 다카마츠는 다른 매력이 더 많은 곳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동. 카가와 현은 "우동 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우동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카가와 현은 예전부터 쌀보다는 밀을 많이 키워왔고, 남아도는 밀가루를 소비하기 위해 우동을 "적극" 먹게 됐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사누키 우동"의 "사누키" 또한 카가와 현의 옛이름이라고. 이렇다보니 카가와 현의 현청 소재지인 다카마츠는 일명 "우동투어"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고로, 다카마츠에 방문한 이상 우동투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동 현에서는 우동 여권이 필수!


말이 거창해 "우동투어"이지 사실 우동투어는 별게 아니다. 맛있는 우동을 찾아 먹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우동투어의 핵심. 스스로 발품을 팔아 우동집을 찾아 돌아다닐 수도 있고, 짜여진 일정대로 우동집들을 순례하는 우동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다면 우동 택시를 대절할 수도 있는 등 그 방법은 다양하니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가장 보편적인 수단은 우동 버스다


우동은 미끈하고 뽀얀 면발, 그리고 맛있는 국물(혹은 소스), 이렇게 두 가지 요소가 전부인 음식이다. 물론 다른 고명들이 추가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결국 본질은 면발과 국물에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실 우동은 별 영양가가 없는, 그저 정제된 탄수화물 덩어리와 나트륨 폭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동이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그 단순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그릇 안에 모두 담을 수 있고 별 다른 귀찮은 도구나 추가적인 반찬이 필요 없는 음식. 후루룩 하는 소리와 함께 '오늘 하루도 큰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흘러간다'는 안도감을 주는 음식이 그리 흔치는 않으니까. (물론 큰 부담없는 가격 역시 우동의 인기에 한 몫 거들고 있을테고)

<삼제면소>의 우동


'우동이 다 그게 그거겠지, 혹은 두어번 먹으면 질리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카마츠에서 만난 우동들은 다들 제각각의 특징이 있어 여러번 먹어도 전혀 지겹지가 않았다. 전통 가옥을 개조해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와라야>의 우동은 쫄깃했고 할머니가 다정하게 담아준 <삼제면소>의 우동은 부드러웠다. '가케 우동'이라 불리는 우동은 그간 내가 흔히 먹어온 우동들마냥 따끈한 국물이 넘실거렸고 '붓가케 우동'은 '가케 우동'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우동으로, 국물 대신 소스를 부어넣고 내가 직접 비비도록 되어있었다. <가마후쿠 우동>은 갓 끓여낸 우동을 직원이 테이블로 가져다 줬고 <메리켄야 우동>에선 내가 직접 쟁반을 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급식을 받듯 우동을 받아보기도 했다.


다마카츠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우동들을 만나면서 매번 행복했다. 물론 내가 느낀 행복은 심리적인 요인 뿐 아니라 탄수화물이 분해되면서 빚어낸 효과, 즉 호르몬의 장난질일 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다카마츠는 맛있었고, 우리는 행복했다는 것일 듯 싶다.


세상에는 내가 몰랐던 수많은 우동이 있고 더 나아가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내가 이미 경험했고 알고 있던 것들이 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겠지만, 그 세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세상에 분명히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세계는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머리에 우동 사리가 가득 들어 찬 다카마츠의 <우동 뇌> 캐릭터



사누키 우동으로 통하는 다카마츠의 우동들은 굳이 따지자면 국물보다는 면에 더 집중하는 스타일로 정확히는 면이 얼마나 쫄깃하고 탱글탱글한지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이렇다보니 면의 식감보다 국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를 더 따지는 이들에겐 기대 이하일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단 국물부터 한 모금파'이기 때문에 우선은 가볍게 '가케 우동'부터 시작해보자.


[가케 우동]

우리가 흔히 '우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국물 맛이 끝내줘요!'하는 바로 그 우동. 뜨거운 국물에 푹 잠기다보니 아무래도 면발의 탱글함은 조금 떨어지지만 몸을 녹여주는데는 역시 가케 우동이 최고다.


[붓가케 우동]

다카마츠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우동. 국물(사실 국물보단 소스에 가깝다)은 바닥을 채울 정도로 자박하게만 부어나오거나, 혹은 내가 직접 붓게 되며 "약간 흥건한 비빔면" 수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면발은 차갑게 주문할 수도 뜨겁게 주문할 수도 있는데 뜨거운 경우엔 날 달걀을 함께 올려 면발의 온기로 달걀을 익히며 비비기도 한다.


[가마아게 우동]

뜨거운 면발을 면수에서 건저낸 후, 따로 제공되는 국물(국물이라기보단 쯔유)에 찍어 찍먹 스타일로 먹는다. 면발과 닿으며 국물이 점점 희석되기 때문에 국물은 후루룩 마시기에는 약간 짠 편으로 제공된다. 고명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로지 면발의 식감과 국물의 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루 우동]

가마아게 우동과 유사하지만 면발을 한번 찬 물로 헹궈내어 차가운 형태로 제공된다. 겉보기엔 메밀 소바와 비슷한데 면발이 메밀이 아니라 우동 면이라는 차이가 있다. 면발의 쫄깃함과 탱글함을 경험하고 싶을 때는 이 메뉴가 가장 좋다.


[그 외]

위 분류는 우동의 형태에 따른 것. 그와는 별개로 우동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훨씬 더 다양한 우동들을 만날 수 있다. 제철 재료를 활용한 "계절 한정" 우동들도 제법 많은 편.


우동 못지 않게 우동집들도 여러 형태가 있다.

  

[일반 식당 형태]

테이블에서 메뉴를 보고 직원에게 주문하면, 직원이 가져다주는 일반적인 형태. 찬찬히 메뉴를 볼 수 있으므로 우동 주문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이런 식당이 좋다.


[셀프 식당 형태]

배식을 받듯 쟁반을 들고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우동과 튀김류 등을 담은 뒤 한꺼번에 계산한다. 뒤에 사람이 주르륵 서있는 경우가 많아 오래 고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으며, 눈 앞에 펼쳐진 튀김류의 비쥬얼에 홀려 이것저것 충동적으로 담게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먹은 뒤 식기들을 퇴식구에 가져다 줘야 하는 곳들도 있으니 잘 살펴보자.


[제면소 형태]

제면소는 사실 식당은 아니어서 테이블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식당이라고 하긴 뭐한 공간에서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예 테이블이 없는 경우도 있어 이럴 땐 바깥에 대강 서서 먹는다고. 이런 형태의 우동집은 이번 여행에서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지난 번 쇼도시마 여행 때 방문해본 적이 있다. (대신 그때는 우동면은 아니고 소면을 만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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