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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07. 2017

도서관, 섬에 뿌리를 내리다

섬에서 절반 #18 오기지마

온바 팩토리에서 만난 여러 온바 중 책을 싣고 있는 온바가 하나 있었다. 책꽂이 대용으로 저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사실 이 온바는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다. 오기지마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온바에 책을 싣고 다니며 일명 '이동식 도서관'을 운영하는 '관장님'이 있었던 것. 사진 속의 온바가 정말로 예전에 관장님이 끌고 다녔던 그 온바는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모양새였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감회가 새로웠다.


애당초 200여명 남짓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조그만 섬에 도서관이 있을리 없었기 때문에 관장님 개인이 이런 형태로 운영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후 여러 시도를 통해 도서관 만들기를 추진, 지금은 아예 정식 도서관이 생겼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가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빈 집에서 공사를 시작해 지금의 그럴싸한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렇게 태어난 오기지마 도서관. 실제로 방문해보니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느낌은 전혀 없고 쉼터나 동네 사랑방에 가까워보였다. 편하게 앉아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차도 한 잔 마시고, 기분에 따라선 맥주도 마실 수 있는 공간.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 때때론 조그만 전시회나 이벤트, 워크숍 등도 열리는 공간. 이런 조그만 섬에 이런 공간이 갖춰져 있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에선 동네에 하나 둘 생겨난 독립 책방들이 어느 정도 이런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이런 공간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런 매력적인 공간을 만난 이상, 그냥 휙 둘러보고 떠날 수는 없다. 잠시라도 짬을 내어 머무르고 가야겠다 싶어 얼른 자리를 잡고 서가를 둘러 봤다.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지만 그럴 때는 그림책이나 사진집을 택하면 되니까 별 문제는 없다. 고양이 사진집으로 선택. 흑백의 필름 카메라로 담은 고양이의 모습이 재미있고 사랑스러웠다.


바로 전날 밤에 가즈오 이시구로가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는데 발 빠르게 그의 작품들이 앞쪽에 비치되어있어 조금 놀랐다. 엄청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운영되고 있는 도서관이라는게 이런 조그만 것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아무래도 여기 비치된 온바는 몇년 전까지 관장님이 실제로 끌던 온바인 것 같다. 실물은 아니라 해도 아마 이런 모양이었을터. 아무리 바퀴가 달려있다고 해도 책을 가득 싣고 나면 그 무게가 상당했을텐데, 그걸 끌고 언덕배기의 섬을 돌아 다녔을 관장님을 생각하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하긴, 애당초 대단한 사람이니 이동식 도서관을 실제로 섬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힘이란 사뭇 놀라운 것이어서, 작은 섬에 사는 사람을 마치 대도시에 사는 것처럼 만들어줄 수도 있고, 당장 유럽의 거리를 거닐게 해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은 대도시의 사람들보다는 작은 섬에 살고 있어 이런저런 물리적 제약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 공사가 완벽히 완료된 것은 아니어서 계속 뭔가 진행 중이다. 이 날만 해도 도서관 앞마당이 약간 어수선했는데 얼마 전에 도서관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10월 24일에 앞마당 보수공사가 완료되었고 <노인과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안내문이 올라와있었다. 사람이든 도서관이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기에, 한번 더 오기지마의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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