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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06. 2017

당신들의 기억

섬에서 절반 #17 오기지마

오기지마에는 아기자기한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 중 섬 주민들의 기억을 봉인했다는 <기억의 병>은 보기에도 예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직관적이라 좋았다. 각 병 안에는 왜 이런 물건이? 싶은게 들어있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그 사연을 알듯 말듯해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단종된 마일드 세븐 담배(메비우스로 바뀌었다)가 들어있는 병이 있었는데, 이게 담배를 피웠던 젊은 날의 기억을 담고자 한건지, 혹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여서 아버지를 추억하는 마음에 담은건지 등의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그만큼 각자의 상상력으로 병 안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 하나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오랜 시간 머물렀다.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이 들어있는 병들이 꽤 있었는데 아마도 한 때는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친구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만약 나에게도 병 안에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기억을 봉인할까, 나는 아직 답을 내지 못했다.


이 작품은 여러 개의 병이 모여 아름답게 빛을 내는데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은은한 빛을 낸다. 우리를 지탱하는 기억도 사실은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소소하고 은근한 것들이리라.

<記憶のボトル / Memory Bottle>


다음 작품은 <방 속의 방>. 얌전하고 평범해보이는 집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뒤틀어진 다다미방을 만날 수 있다. 정확히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의 집을 옆으로 돌려놓은 모양새다. 우리가 알던 바닥은 벽에, 벽은 바닥에 가있다. 이 상태대로라면 지금 내 발이 닿아있는 곳이 새로운 바닥이 되는걸까? 아니면 여전히 대나무 돗자리와 찻상이 놓여있는 곳을 바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애당초 바닥이란 무엇이었을까 등을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기에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벽과 바닥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 나만의 바닥과 벽을 정하고 더 나아가 나만의 방을 찾는 것, 그래서 아마도 이 작품의 이름이 <돌아누운 방> 따위가 아니라 <방 속의 방>이 된 것 아닐까 싶다.

<部屋の中の部屋/The room inside of the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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