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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04. 2017

주민들을 위한, 진짜 축제

섬에서 절반 #15 오기지마

<오기지마 골목 벽화 프로젝트 wallalley>만큼이나 골목 중간중간에서 마칠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온바(onba)라는 자그마한 카트인데, 한국에서는 구루마(정확한 명칭은 아니겠지만) 정도로 통하는 물건이다. 노인분들이 주로 끌고 다니는 바퀴달린 작은 수레 말이다. 아무래도 섬에 노인들이 많다보니 집집마다 온바가 있는 분위기인데,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대문 앞에 덩그러니 내놓은 집도 있고, 마당에 놔둔 집도 있고, 아예 안 보이는 곳에 꽁꽁 넣어둔 집도 있다. 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온바를 구경하는 것도 오기지마 산책의 묘미 중 하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온바들이 수상하다. 닮은 온바가 없이 모두 제각각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다들 "ONBA FACTORY"라는 글씨가 써있다는 것. 사실 이 온바들은 모두 세토우치 예술제의 작품으로서 만들어진 것들로, 아마 오기지마의 여러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녀석일 것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외딴 섬에서 제 아무리 세계적인 예술제가 열린다고 해도 섬에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예술제 기간 중엔 외지인들이 몰려오니 수입이 증가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시적인 효과에 가까울 것이다. 축제가 끝나고 외지인들이 모두 빠져나간 섬은 어쩌면 축제가 열리기 전보다 더욱 적막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거기다 섬을 무대로 하는 예술제라고 해도 결국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은 섬 주민들이라기보단 대개 외지인이었을터. 그렇게 보면 주민들 입장에선 '남의 잔치를 내 집 앞 마당에서 하는군'이라고 생각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외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일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이를 테면 쓰레기 무단 투기, 소음 문제, 사적인 공간까지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 등.. 그런 것을 참고 감수할 만큼 과연 이 축제가 섬 주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까?


이런 점들에 의문을 갖게 되면서 <온바 팩토리>가 시작됐다고 한다. 축제가 섬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면서, 그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취지로. 고민 끝에 주민들의 일상 속에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물건인 온바를 다채로운 색깔과 장식으로 꾸미게 됐고, 말 그대로 '일상 속의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온바 팩토리>에 들어섰을 때 작가님은 창고에서 한창 온바를 만드는 중이었는데 여기에 방송국 스텝들이 몰려와 촬영까지 하고 있어 당장 구경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옆의 카페에서 한숨 돌리며 대강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의도했던 카페 방문은 아니었지만 창 밖으로는 지붕이, 더 멀리는 바다가 보여 즐거운 기분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카페 한 켠엔 사진들도 있었다. 아마도 이 공간은 처음에는 빈 집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다.


드디어 온바 구경이 가능해졌다. 사실 별 특별할 것은 없다. 실물 온바는 몇개 되지않는데다가 직접 끌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주민들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주민들은 다들 자기 소유의 개성 있는 온바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모두 웃고 있는 모습이다. 내 작품이 누군가를 웃게할 수 있다니, 그런 것이야 말로 작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オンバ・ファクトリー / ONBA・FACTORY>


주민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나는 것도 물론 큰 기쁨이지만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 느껴지는 이런 작품도 참 좋았다.


지붕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유독 푸르다. 어젯밤에 내린 비 때문에 바깥의 빨간 의자는 아직 젖어있었다. 요 자리에 앉아보지 못한게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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