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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Oct 29. 2017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섬에서 절반 #11 메기지마

메기지마에는 물론 바람과 관련 없는 작품들도 많다. 휴교 중인 초등학교를 무대로 하여 온갖 잡동사니를 모두 끌어모아 만들었다는 <메콘(女根)>.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아마도 붉은 부표와 그 위에 우뚝 솟은 야자나무이겠지만, 그 것이 전부는 아니다. 야자나무 그 주변은 마치 쓰레기장이 연상될 만큼 정신 없게 꾸며져있다. 게다가 예술제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그 주변(엄밀히 말하자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메콘>은 점점 더 복잡해질지도 모르겠다.


한번쯤 사람을 움찔하게 만드는 이 작품의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메기지마(女木島)라는 이름 자체에 여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女根>은 말 그대로 메기지마의 뿌리이자 사람들이 메기지마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에 대한 바램, 희망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게 아닐까 상상해봤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작품이 현재 휴교 중인 학교 안에 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女根 / MECON>


다음으로 만난 작품은 <부재의 존재>라는, 약간의 말장난 같은 이름을 가진 작품이었다. 리모델링한 집에 두 개의 작품이 설치되어있었다. 하나는 다다미방에, 또 하나는 집 안 마당에 말이다.

세토우치 공식 홈피에 소개된 '다다미방' 사진 / 실제로는 촬영 불가

벽의 한 쪽(사진에서는 오른쪽)은 거울이고, 다른 한 쪽(왼쪽)은 실제하는 공간이다.


그 중 다다미방에 설치된 특히 작품이 재미있었는데, 착시 효과를 활용하여 벽 너머 실재하는 공간과 거울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꾸며놓은 신기한 작품이었다. 단순히 벽에 거울을 걸고 구멍을 뚫어 놓은 수준이었다면 금방 눈치를 챘을텐데 이 부분을 가리기 위해 방 바닥의 기울기 등을 교묘히 조정해 착시 효과를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등 꽤나 정교한 면도 갖추고 있었다.


<不在の存在 / The Presence of Absence>

<부재의 존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폐창고를 활용한 극장 비스무리한 건물이 있다. 알고보니 이 건물 자체가 <아일랜드 씨어터 메기>라는 하나의 작품. 입장권을 판매하는 직원도 극장의 매표소 안에 앉아있다.

< ISLAND THEATRE MEGI 「女木島名画座」>


내부엔 누군지 알 듯 말 듯한 영화배우들의 초상화와 영화 포스터 등이 그려져있다. 아주 잘 그렸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설픈 맛이 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어릴 때만 해도 극장 바깥에 내거는 광고판이 '진짜 그림'이던 곳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곳을 마주치기가 정말 힘들어졌다. 나는 영화 한편, 극장 한곳 한곳에 각별한 추억을 가질 만한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모든 극장이 동일한 브랜드의 멀티 플렉스로 바뀌기 이전의 세대이긴 해서 자잘한 기억들은 갖고 있다.


하지만 맨해튼의 낡은 극장을 닮은 <아일랜드 씨어터 메기>는 내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보다 훨씬 이전 시절의 기억들이 응집된 듯한 작품이었다. 상영관 안에 차분히 앉아있다보니 그리움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리움을 갖는다는게 조금은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예전의 것을 추억한다'는 점은 매우 보편적인 정서니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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