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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Oct 28. 2017

바람의 섬, 메기지마

섬에서 절반 #10 메기지마

오니가시마 동굴 구경이 버스 운행 시간에 맞춰 진행되었기에 몹시도'빨리빨리'의 경향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터미널부터 다시 찬찬히 우리만의 속도로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숨 돌리고 나자 거센 바람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 거의 지붕 높이까지 높게 쌓은 돌담 '오오테'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도 그렇고 대부분의 섬엔 거의 돌담이 있지만 이렇게 높게 쌓은 경우는 보지 못했는데, 이건 돌담이라기보단 견고한 성벽에 가까워 보였다. 평소 얼마나 매서운 바람이 불길래 이렇게까지 꽁꽁 집을 감춰두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이 날은 구름이 끼긴 했어도 바람 한점 없는 날이었기에.


페리 터미널에서 받은 약도를 따라 섬 곳곳의 작품들 구경에 나섰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만한 위치다. 첫번째로 만난 작품은 <균형>이었다. 1만개 이상의 미러 글라스를 네모모양으로 깎은 후, 실로 주욱 연결한 작품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반사시켜 공간 내부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람이 불면 미러 글라스들이 흔들리면서 관람객은 더욱 환상적인 빛에 둘러싸이게 된다는데 그런 경험은 해볼 수 없었다. 날이 좀 더 맑아 볕이 쨍하고, 바람이 좀 더 부는 날이었다면 화려한 빛의 물결을 구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날은 그저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均衡 / Equipoise>


페리 터미널 근처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서 있다.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돛과 파도소리, 그리고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지는 환상의 조합을 뽐내는 작품이다. 원래는 윗부분에 돛을 모두 펼친 상태여야하는데 이 날은 돛이 모두 내려진 상태였다. 대항해시대의 대단한 배라고 해도 항상 순풍을 타는 것은 아닐테니 항상 돛을 펼치는 것은 아닐터. 늘 최상의 상태만을 경험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여행도, 삶도 결국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날 <20세기의 회상>은 우아하게 돛을 모두 펼친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운치있는 모습이었다.

<20世紀の回想 / 20th Century Recall>


방파제엔 300여마리의 갈매기가 늘어서있다. 이 작품의 이름은 <갈매기의 주차장>.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갈매기들이 일제히 이쪽을 봤다, 저쪽을 봤다 하게 되는데 이는 실제 갈매기 무리의 습성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한다.


문득 생각해보니 메기지마에는 "바람"에 관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 <균형>도 <20세기의 회상>도 <갈매기의 주차장>도 바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작품의 반쪽만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고보니 오오테도 그렇고. 역시 메기지마는 바람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바람의 섬인가 보다.

<カモメの駐車場/ Sea Gulls Parking Lot>


멀리 산기슭에도 작품이 하나 보인다. 이 작품의 이름은 <테라스 윈드>. 역시나 이름부터 바람을 품고 있다.

<段々の風 / Terrace W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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