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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Oct 27. 2017

그 버스는 꼭 타봐야 한다

섬에서 절반 #9 메기지마

데시마에 이어 두번째로 방문한 섬은 메기지마. 한자로는 女木島라고 쓴다. 그리고 메기지마와 늘 한 쌍이 되는 섬인 오기지마는 男木島라고 쓰는데 이름처럼 이 두 섬은 한 세트로 봐야 한다. 두 섬을 둘러볼 계획을 짤 때도 이 점을 염두에 둬야하는데 그건 다카마츠 항 기준으로 다카마츠 -> 메기지마 -> 오기지마 -> 메기지마 -> 다카마츠 하는 식으로 배가 다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다카마츠와 오기지마 사이를 직통으로 다니는 배는 없고, 중간에 메기지마를 무조건 들르게 된다는 것.


두 섬을 모두 들르기 때문인지, 이쪽은 진짜 '페리'리고 부를 만한 배가 다닌다. 섬 자체는 두 섬 모두 데시마보다 훨씬 작지만 배는 데시마를 오가는 배보다 훨씬 크다. 전날까지 장대비가 내리는 등 걱정스러운 날씨였는데, 다행히 흐리긴 해도 비는 그쳤다. 배도 무사히 출항.


티켓에도 씌여있듯, 메기지마는 '도깨비 섬'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그건 모모타로 설화 때문이다. 사실 모모타로와 관련된 이야기는 메기지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있고 지역마다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요 줄거리는 '모모타로' 라는 용감한 소년이 꿩, 개, 원숭이와 함께 도깨비를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카야마에 전해지는 모모타로 이야기에서는 도깨비의 거처를 오카야마현 소자시의 기조잔(鬼城山)으로 보고, 메기지마에서 인용되는 모모타로 이야기에선 이 장소를 메기지마의 오니가시마 동굴(鬼ヶ島大洞窟)로 본다. 이쯤 되면 원조 논쟁이 붙을 법도 한데 양쪽 모두 그럭저럭 공존하고 있는 모양이다.


메기지마의 페리 터미널에서 오니가시마 동굴로 가는 버스를 바로 탈 수 있다. 이런게 굴러가나? 싶을 정도의 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도 그 버스가 아니라 다른 버스였다. 하지만 다른 버스도 낡은건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도 버스만큼이나 낡으셨다.

다행히도 이 버스는 아니었다


허름한 버스로 고작 10~15분 정도 이동하는데 편도 400엔, 왕복으론 800엔이라고 해서 '뭐 이렇게 비싸' 싶었는데 막상 버스를 타보니 더 비싸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가격이었다. 작은 차로도 오르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꼬불꼬불하고 좁은 산길을 이 커다란 버스가 잘도 오른다. 가파른 언덕을 쉬지않고 10~15분 가량 달리자 드디어 동굴에 도착. 이 정도의 산길을 걸어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오니가시마 동굴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이 버스는 무조건 타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동굴로 가는 길목을 따라 다양한 도깨비들이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도깨비를 굳이 영어로 바꾸면 고블린이겠지만 서양의 고블린과 달리 동양의 도깨비는 좀 귀여운 맛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런 '뿔 달린 도깨비'의 모습도 사실은 일본 도깨비의 모습일 뿐, 모든 도깨비가 다 이렇게 생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원래 한국의 도깨비는 뿔도 없고 옷도 모두 갖춰 입은 모습에 방망이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가시 달린 방망이가 아니라 보통의 나무 방망이여서 그저 장난기 많고 덩치 큰 이웃집 형님 느낌에 가깝다고. 하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뿔달린 도깨비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어서 여전히 한국에서도 이런 모습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긴 한다.


동굴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면 내부를 안내해주는 가이드 할아버지가 계신데, 버스가 다시 떠나는 시간에 맞춰 폭풍 설명과 함께 아주 빠르게 동굴 투어를 진행해주신다. 설명은 물론 일본어. 이럴 땐 그 나라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점이 많이 아쉽다.


오니가시마 동굴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고,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이지만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그 사연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동굴의 길이가 400m, 넓이가 4,000 제곱m에 이르는 걸 보면 심심해서 만든 것도 아닐테고 꽤 많은 사람들이 꽤 오랜 기간 동원됐을텐데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없다니, 그러기가 더 어려울 것 같은데 정말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동굴의 천장이 높았다 낮았다 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다녀야 해 조금은 불편하지만 중간중간 여러 도깨비들이 있어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다. 도깨비들이 훔쳤다는 보물까지 바위 사이에 숨겨두는 디테일.. 역시 일본이다.


동굴 중간쯤 가면 도깨비 얼굴을 담은 기와들이 잔뜩 있다. 이것들은 카가와의 전통 공예품인 오니가와라(鬼瓦)로 카가와의 중학생 3000여 명이 직접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수업시간에 웃고 떠들며 만들었을까, 아니면 수행평가로 나름 진지하게 만들었을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하나씩 뜯어보면 다 재미있고 귀여운데 이것들이 어두운 동굴 안에 떼로 몰려있으니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긴 했다. 세토우치 예술제에도 등록된 작품이다.

<オニノコ 瓦プロジェクト / Oninoko Tile Project>


하지만 정작 이 동굴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도깨비도, 도깨비 기와도 아니고 박쥐였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도 박쥐들이 꽤나 있었는데, 이리 저리 날아다녀 공포심을 조장했다. 우리가 기겁하자 가이드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박쥐는 초음파로 움직이기 때문에 절대 사람에 부딛히진 않으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그런걸 떠나 그냥 무서웠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진짜 박쥐를 본건 처음이니까.

사진 속에는 박쥐가 없습니다


출구에 가까워지자 드디어 모모타로 등장. 이야기 상에선 모모타로가 도깨비의 목을 베는 걸로 되어있지만 왠지 이쪽은 모모타로와 도깨비가 화해를 한 듯한 모습이다.


동굴 바깥으로 빠져나오면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희뿌연 안개가 끼어있어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개는 또 그 나름의 맛이 있으니까 괜찮다. 그리고 본래 이른 아침부터 하늘이 새파랗게 쨍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동굴까지 올라올 때 탔었던 버스를 그대로 다시 타고 페리 터미널로 향했다. 역시나 하산도 대단한 운전 실력을 요하는 코스건만 버스는 거침없이 내달린다. 이 버스가 터미널에 닿을 때 즈음 배가 한 대 더 들어오기 때문에 늦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조금 뒤면 버스는 또 다시 손님들을 싣고 이 길을 오를테고, 사람들은 또 다시 기사 아저씨의 운전 실력에 감탄하겠지. 그리고 아마 여기저기 이야기할 것이다. 그 버스는 정말 대단하다고, 꼭 타봐야한다고. 아무래도 오니가시마 동굴 구경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산길을 질주하는 버스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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