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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Oct 24. 2017

고요하겠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섬에서 절반 #7 데시마

오래된 민가를 리모델링해 연출한 <데시마 요코오관>은 '붉은 빛'으로 대표되는 작품이다. 붉은 유리를 통해 보이는 집과 정원은 온통 불타는 듯, 진한 노을에 물든 듯 어지럽고 몽환적이었다.

<豊島横尾館 / Teshima Yokoo House>


<데시마 요코오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정원'으로 붉은 바위들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이 포인트다. 물이 흐르는 길의 바닥들은 노랑과 파랑의 모자이크로 조각조각 물들어있는데 이 부분은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나 훈데르트바서의 집들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여기에 붉은 빛깔의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어 알록달록 화려한 느낌은 배가 된다.


이 물길은 다다미방 아래까지 쭉 연결되어있는데, 다다미방의 바닥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물이 흐르는 것, 잉어들이 헤엄치는 것 등을 방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볼 수도 있다.

세토우치 공식 홈피의 '정원' 소개 사진 / 실제로는 촬영 금지


다다미방으로 구성된 실내엔 10여점의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이 그림들 역시도 정원에서 흐르는 물이 다다미방과 이어져있듯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었다. 푸른 마블링을 닮은 듯한 추상화를 시작으로, 바로 옆엔 그 추상화 패턴과 동일한 패턴으로 구성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수많은 해골들을 배경으로 그려져있고, 그 옆 그림 속엔 또 해골을 들고 있는 남자가 그려져 있는 식이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은 그렇게 서로 조금씩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연결되어있었다. 그림들의 연결 고리를 읽으면서 우리의 삶도 이렇듯 알게 모르게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benesse-artsite의 실내 소개 사진 / 실제로는 촬영 금지


낮은 집들 사이에서 혼자만 불쑥 솟은 굴뚝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데 이 삐죽 솟은 굴뚝 역시도 관람할 수 있다. 굴뚝 바깥에는 타일이 빽빽했다면 굴뚝 안쪽은 빈티지한 엽서 이미지들이 다닥다닥 프린트 되어있어 빽빽했다. 게다가 굴뚝 내부의 바닥과 천장엔 거울이 붙어있어 마치 굴뚝이 끝없이 뻗어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굴뚝의 존재감만큼이나 <데시마 요코오관>이 주는 여운도 컸다.


한가지 팁을 공개하자면, 특히 <데시마 요코오관>에는 관람객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데 이 화장실도 매우 독특하니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한다.


데시마 섬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이에우라 항으로 향했다. 아침 배로 섬에 들어온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줄 지어 빌려갔던 자전거들은 거의 다 제자리를 찾아 돌아와 있었다. 섬과 외부를 연결하는 배 편이 모두 끊기고 나서야 섬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외지인들이 모두 떠나간 저녁의 섬은 아마도 썰물이 빠져나간 바다처럼 고요하겠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또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와글와글, 자전거를 빌려 섬 곳곳을 누비고 멋진 예술 작품들을 둘러보며 즐거워 하고, 맛있는 음식에 감탄하면서 다시금 섬을 채워줄테니까.


계단식 논을 끌어안은 자급자족의 섬, 데시마 탐방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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