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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Oct 16. 2017

묘하군요, 데시마 미술관

섬에서 절반 #3 데시마

쭉 걸어 데시마 미술관으로 향했다. 귀여운 송아지와 일 잘하게 생긴 검은 소를 만나고 꽃구경도 조금 하며 걷다보니 이내 바다로 내달려야만 할 것 같은 시원한 길이 나타나고, 곧 데시마 미술관도 시야에 들어온다.


물방울을 닮은 듯, 이글루를 닮은 듯, 둥글둥글한 모습의 데시마 미술관. 주위의 야트막한 언덕과 잘 어울리는 듯 아닌 듯 아리송한 모습이다. 분명 형태상으론 이질감이 없는데 온통 푸릇푸릇한 언덕 가운데 흰 돌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느낌이라 묘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구멍이 뻥 뚫린 돌덩이라니, 납작한 도자기 같기도 하고 커다란 단추 같기도 하다.

드디어 만난 데시마 미술관


데시마 미술관에 입장하려면 일단 미술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야한다. 좁은 산책로 주변엔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미술관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풀과 나무 같지만 사실은 미술관을 짓고 산책로를 구성할때 꽤나 엄선해서 고른 풀과 나무들이라고 한다. 앞사람을 따라 찬찬히 걷다보면 어느새 눈 앞에 미술관 입구가 나타나는데 이 때부터는 안내 요원의 지시에 따라 신발을 벗고, 입장하면 된다.


미술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나 휴대폰 사용, 큰 소리로 떠들거나 뛰는 행위 등이 모두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꽤나 조용한 편으로, 경건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찬찬히 내부를 둘러보니 일단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미술관 내부에 각이 진 부분이나 기둥이 한 개도 없다. 전체적으로 모두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명확히 알 수 없기에 얼핏 뫼비우스의 띠 같은 느낌도 받았다.


바깥에서 이미 보았듯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데 사람들은 대개 이 구멍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누워있다. 우리도 구멍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니 인위적인 콘크리트의 촉감이 무척이나 차다. 그 차가움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제야 천장의 구멍을 통해 하늘이 보이고 풀벌레 소리와 새 소리도 들린다. 여기에 가느란 리본과 실도 매달려있어 바람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도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매우 인위적인 공간 안에서 도리어 "자연과 하나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니, 역시나 묘한 기분이다.

세토우치 공식 홈피의 데시마 미술관 소개 사진 / 미술관 내부는 촬영 금지


미술관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면, 미술관 바닥에는 작은 물방울이 굴러다니고 있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생겨나고 구슬마냥 또르르 구르다가 어디론가 흘러들어 사라지거나, 다른 물방울과 합쳐지며 더 큰 물방울로 자라나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이 물방울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쪼르르 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렇게 주변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고, 작은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미술관 안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기념품 가게와 카페도 미술관과 흡사한 구조이다


미술관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풍도(豊島)라는 이름답게 미술관 옆 언덕은 모두 벼들이 빼곡한 계단식 논이다. 푸른 계단이 총총히 놓인 듯한 느낌의 계단식 논.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카라토 항 근처에도 볼 만한 작품들이 좀 있다고 해 이후에는 그 쪽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데시마 미술관에서 카라토 항까지는 버스로는 한 정거장이지만 사실은 1km가 넘는 거리로 걷기엔 조금 멀다. 그나마 다행인건 오르막길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많이 걸어야할 때는 반드시 미리 주전부리를 챙긴다. 걷기에 열중하거나, 주변 구경에 빠지다보면 끼니 때를 놓친다거나 주위에 뭔가 먹을 만한 곳이 없다거나, 혹은 갑자기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초콜릿이나 과자(스낵 류보다는 쿠키나 비스킷 류가 좋다)를 챙기는 편이지만, 이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맛밤을 챙겼다. 밤은 먹는 족족 그대로 볼에 가서 살이 되어 달라붙는 녀석인 주제에 까먹기도 어려운, 까탈스러운 녀석이다. 그러니까 밤을 먹을 때는 남이 까준 것을, 나의 활동량이 최대일 때 먹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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