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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Nov 02. 2017

걸음이 느려지는 곳, 오기지마

섬에서 절반 #14 오기지마

메기지마(女木島)와 오기지마(男木島). 이름처럼 두 섬은 쌍을 이루면서도 정말로 여자와 남자처럼 몹시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메기지마가 커다란 섬 넓이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매력을 뽐낸다면 오기지마는 오밀조밀한 쪽에 가까운 편이다. 각 섬들에 배치된 예술 작품들도 느낌이 많이 다른데 메기지마의 작품들은 큼지막하면서 압도적이었고, 오기지마의 작품들은 좀더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느낌. 양쪽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여서 하루에 두 섬을 모두 돌아보는 여정임에도 지루하다거나 지칠 틈이 없었다.


메기지마에서 페리로 20분이면 오기지마에 도착한다. 항에 가까워질수록 섬의 비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도 점점 가까워진다.

오기지마에 도착 1분 전


오기지마 항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오기지마의 혼>이다. 다양한 언어들이 조합된 지붕의 그림자가 수면에 투영되면서 '반투명한 공간'같은 느낌을 주는데 아쉽게도 지붕 위에 한국어는 없었다. '다른 언어들은 다 있으면서 어떻게 바로 옆 나라의 언어가 없을 수가 있지? 설마 일부러 뺐나? 이것이 바로 일본인들의 혐한?'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 작품을 만든 작가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스페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니 대강 수긍이 됐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말로 한국이나 한국어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으니까. 누구나 자신이 속한 세계 위주로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속한 세계와 당신이 속한 세계는 많이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친구가 스페인 회사에 취업을 하려 했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설명해야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주 예전 이야기 같지만 무려 2017년에 있었던 일이다)

<男木島の魂 / Ogjima’s Soul>


<오기지마의 혼>을 뒤로 하고 슬슬 마을 구경에 나서 본다. 오기지마는 평지보다 비탈이 훨씬 많아 절로 걸음이 느려지는 동네다. 게다가 좁은 골목들도 미로처럼 얽혀있는데 여기에 예술 작품들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이런 풍광에 큰 역할을 하는 녀석은 바로 알록달록한 집들. 이 집들은 모두 <오기지마 골목 벽화 프로젝트 wallalley>로 불리는데 섬에서 모은 폐자재에 다채로운 색들을 칠해 집 외벽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wallalley는 wall과 alley의 합성어로 간단하게 작품의 핵심을 담으면서도 두 단어의 둥글둥글한 발음도 유사하니, 꽤 잘 붙인 이름인 것 같다.

<男木島 路地壁画プロジェクト wallalley / Project for wall painting in lane, ogijima wallalley>


요즘은 한국 곳곳에도 벽화 마을이 있지만 대부분 하나의 벽 전체에 벽화를 그려넣어 경쾌하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벽의 일부에 조금씩만 적용하니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그리고 골목의 집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꾸몄다면 자칫 정신 없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도 이런 집들은 띄엄띄엄 위치하고 있다. <오기지마 골목 벽화 프로젝트 wallalley> 덕분에 벽화가 있는 집과 없는 집, 그리고 주위 풍경까지 모두 조화를 이루며 단조로운 골목에 일종의 리듬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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