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홍콩은 덥고 복잡하고 물가도 비싸고 뭔가가 자꾸 휙휙 변하는 관계로 그닥 만만한 여행지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다시 가고 싶은 곳 중 하나다. 홍콩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맛. 홍콩의 맛이란 미슐랭 3스타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그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후텁지근한 거리를 걷다가 얼음 동동 띄운 밀크티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단 음료를 마시면 더 갈증이 날 때도 있지만 어떤 갈증은 맹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기도. 이럴 때는 조금 단 것을 마셔줘야만 기운이 난다.
홍콩식 밀크티는 실크 스타킹으로 내렸다는 란퐁유엔이 대표적이다. 스리랑카 홍차에 연유를 섞어 달콤고소한 맛. 그렇지만 그 맛이 그립다고 해서 스타킹을 꺼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집에선 간단하게 분말 형태의 밀크티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실크 스타킹으로 내린 홍차에 연유를 더한 것을 홍콩식 밀크티라고 한다면 식빵에 버터를 발라 굽고 연유를 끼얹은 것은 홍콩식 토스트라고 할 수 있다. “홍콩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음식들은 대개 홍콩의 일상적인 음식들이다. 이런 음식들은 작정하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찾아가는 그런 대단한 식당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들락거리는 가게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런 곳은 대개 좁고 회전율이 빠르다. 합석은 당연지사에 앉자마자 주문을 하지 않으면 되레 보채기도 한다. 가게에 들어가면서부터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하나요"라고 중얼거리면 "제육 하나!"하고 외치는 한국의 보통 밥집과도 별 다르지 않은 분위기. 홍콩식 토스트 또한 이런 집에서 내는 음식 중 하나다.
이런 집에서 내는 음식은 보통 저렴하고 평범한 재료를 쓴다. 유기농 무첨가 식빵 대신 보통의 하얀 식빵을 적당히 구워 유기농 버터나 비건 오일 대신 싸구려 버터나 마가린을 바르고 꿀이나 메이플 시럽 대신 백설탕을 듬뿍 뿌린다. 밀크티엔 우유 대신 연유를 넣는다. 건강에 그닥 좋을 것 같지도 않고 이미 다 알 것 같은 맛이지만 알고 있기에 더 당기는 그런 맛의 음식들이 재빠르게 테이블로 날아온다. 음식이 빨리 나온 만큼 손님도 빨리 먹고 나가줘야한다는 암묵적 룰만 지킨다면 우리도 테이블 앞에서만큼은 이미 홍콩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야심차게 식빵을 구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때마침 집에 연유가 똑 떨어져 싱가포르산 카야잼을 동원하면서 오늘의 티타임은 홍콩과 싱가포르의 만남이 되었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이런저런 문화가 섞인 곳이며 그 범위는 동양을 훌쩍 넘어선다. 홍콩 자체가 영국 해군이 광둥 남쪽의 작은 섬에 상륙하면서 생겨난 곳이기에 당연할 것이다. 하나의 테이블 위에 서양 음식과 홍콩 문화가 공존하는 일도 다반사이니 여기에 카야잼 정도가 슬쩍 끼어든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최근 몇 년간 대만이나 홍콩 쪽 음료와 간식 거리들이 한국에 공격적으로 상륙, 실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맛이란 그 동네의 날씨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한국의 여름도 이제 그 동네 못지않게 더워져서, 그런 맛이 어울리는 날씨가 되어서 그런걸까.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오지도 않았건만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상상만으로도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