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누군가 집에 놀러왔을 때 멋진 티 테이블을 뽐내고 싶다면 터키식 상차림은 꽤 좋은 선택지가 된다. 일단 무척 이국적인 느낌. 이 이국적인 느낌의 백미는 바로 2단짜리 주전자로 ‘차이단륵’이라는 멋진 이름도 갖고 있다. 터키식 홍차, ’차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꼭 차이단륵으로 내야만 특유의 그 맛이 난다. 그래서 조금 번거로워도 이 주전자를 포기할 수가 없다. 차이단륵으로 차이를 끓이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 아래쪽 큰 주전자에 물을 꽤 많이 채우고, 위쪽 작은 주전자에는 찻잎을 적당히 채워 끓인다.
- 아래쪽 큰 주전자의 물이 끓으면 위쪽 작은 주전자를 내려 뚜껑을 열고 큰 주전자에서 끓인 물을 일부 붓는다.
- 그리고 다시 작은 주전자를 큰 주전자 위에 올려서 좀 더 끓인다.
- 적당히 끓인 뒤 작은 주전자에 우러난 차를 찻잔에 따르고 큰 주전자에서 끓인 물을 부어 취향에 맞게 차의 농도를 맞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홍차처럼 찻잎에 끓인 물을 부어 내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이쪽은 찻잎 자체를 펄펄 끓이는 방식이기도 하고, 찻잎을 끓이기 전에 한번 큰 주전자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작은 주전자 안의 찻잎을 약간 찌는 듯한 과정도 있어 차 맛이 달라지는게 아닐까 싶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런 저런 방식을 다 써봤지만 경험상 이렇게 해야만 훨씬 맛이 좋다.
차이를 흔히 터키식 홍차라고 부르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홍차와 차이는 상당히 다르다. 끓이는 과정에서 예상 가능하듯 훨씬 더 농밀하고 진한 맛. 그러면서도 쓰거나 떫지는 않아 의외로 술술 잘 넘어간다. 그 덕분인지 터키에서는 물처럼 차이를 마신다. 우리로 치면 홍차보다는 보리차에 가까운 느낌. 보리차도 차라고 하기는 하나 그걸 진짜 차로 인지한다기보단 물로 생각하고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경험한 이스탄불에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게될 때는 거의 차이를 내어줬다. 커피 마실래? 라고 하기도 그보다는 차이 마실래?가 더 일반적. 가게에 가도, 호텔에 가도 일단 차이부터 한 잔. 후한 인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지만 낯선 사람이 내어주는 음료를 마시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고 한편으론 '나중에 터무니 없는 영수증을 들이밀며 돈을 받으려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다 대고 얼마인가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화들짝 놀라며 '노 머니!'를 외치곤 했다.)
다행히 이스탄불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이 나에게 권한 커피와 차이는 모두 공짜였고 나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아무런 의도 없이 음료를 권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낯선 이방인에게 한 마디 말을 걸어보고 싶은 의도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 정도면 순수한 의도라고 용인해줄 수는 있는 범위다.
나는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의 호의를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감자가 더욱 소중하다. 감자는 성에 안차면 내 살점을 떼어낼 기세로 물어뜯기는 해도 절대 악의를 가지고 나를 속이지는 않는 존재. 오늘도 험난한 세상에서 시달리느라 수고한 나 자신. 포근한 감자를 꼭 안아본다. (포옹 2초 뒤에 반드시 물립니다.)
※ 이스탄불에서 마신 차이들. 나중엔 '배가 불러서 못마셔요' 라고 거절해야할 정도였고 그걸 사진으로 찍는 걸 이상하게 볼 만큼 일상적. 그래서 훨씬 많은 차이를 마셨지만 사진엔 얼마 남아있지 않다. 물론 카페에서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