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위한 커피, 카페 쓰어 다

베트남, 다낭

by 나예

더워도 너무 덥다. 이제 곧 휴가철. 이 때는 비행기 티켓을 구하는게 쉽지 않을 만큼 공항이 북새통을 이룬다. 한국보다 더 덥다고들 이야기하는 동남아 티켓도 구하기 어렵다. '여기 있어도 더운데 왜 굳이 돈을 써서 더 더운 나라로 가는거지?'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한국도 너무 더워져서 딱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상황이 됐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로 작정하고 날아가지 않는 한 어딜가도 다 덥기 때문에 '피서'라는 단어 자체에 회의감이 들 정도다.


오늘은 동남아의 기분을 느끼며 베트남식 카페를 차렸다. 배트남 커피의 대표적인 모습은 바로 요 '장난감 같은 얄팍한 커피 핀에서 한 방울 씩 떨어지는 커피'가 아닐까. 캡슐 머신에서 시원스레 추출되어 순식간에 커다란 잔을 가득 채워주는 커피에 비하면 커피 핀을 거쳐 커피가 똑똑 떨어지는 시간은 마치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감자도 커피 방울을 언제 후려쳐야할지 몰라 계속 주시 중...


입자가 고운 원두 가루가 오랜 시간을 거쳐 추출되는 커피라 당연히 맛은 매우 쓰다. 이것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그 맛은 거의 사약에 가깝기 때문에 보통은 그 쓴 맛을 중화시켜줄 뭔가를 추가하게 된다. 코코넛 밀크를 추가하기도 하고 달걀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연유. 이것이 바로 베트남 커피 중 가장 대중적인 메뉴로 예상되는 '카페 쓰어 다 (Cà phê sữa đá)'로 피로를 한 방에 날려주는 엄청난 단 커피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믹스 커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훨씬 더 쓰고 훨씬 더 달다. 말 그대로 달콤씁쓸! 땀을 한 바가지 쏟고 나서 이런걸 마셔주면 강력한 카페인과 강력한 당분의 콜라보로 인해 바야흐로 정신이 번쩍 든다.


Cà phê 는 커피를, sữa는 연유를, đá는 얼음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에 '카페 쓰어 다' 라면 이 셋이 꼭 필요하다. 연유와 커피의 순서는 상관이 없지만 개인적으론 얼음은 미리 넣으면 녹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넣는 것을 선호. 그리하여 나는 연유 위에 커피를 추출하고, 거기에 얼음을 몇 조각 넣었는데 커피를 먼저 추출한 뒤에 연유를 붓든, 커피와 연유의 혼합물을 얼음에 끼얹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 자기 스타일이다. 최종 결과물에 그 셋이 함께 있기만 하면 된다.


호이안을 떠나던 날, 방갈로의 푹신한 쇼파에 앉아 시원한 카페 쓰어 다를 한 잔 마시고 한참 바다를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앉아있어보니 그 가게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국에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모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서울에 있는 가게나 제주도에 있는 가게나 똑같이 생겨서 별 재미가 없다. 커피도 그렇다. 우리는 늘 똑같은 커피만을 마신다. 그런 커피는 살기 위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을 가진 커피는 아니어서 무슨 맛인지, 어떤 향이 나는지 등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무신경하게 물처럼, 습관처럼 들이키곤 한다.


그걸 깨닫고나서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가끔이나마 오롯이 즐거움을 위한 커피를, 조금은 이색적이고 특별한 커피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엔 늘 감자가 있다.


오래도록 함께 하길, 나의 고양이.



※ 베트남에서 마셨던 '카페 쓰어 다'들의 향연


※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는 아마도 G7. 커피 핀도 G7 커피만큼이나 쉽게 현지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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