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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Dec 22. 2016

아베이루는 아베이루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 2

차가운 밤을 보내고 맞이한 첫 아침. 포르투 시내를 둘러보는 대신 ‘포르투갈의 베네치아’ 라고 불린다는 아베이루(Aveiro)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아베이루엔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운하가 있고, 이 운하 위에는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닮은 ‘몰리세이루(Moliceiro)’가 떠있다고 한다.      


아베이루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포르투-상 벤투(Sao Bento) 역을 찾았다. 상 벤투 역은 일반적인 기차역과는 달리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외관도 멋지지만 내부는 더더욱. 거대하고 정교한 아줄레주(포르투갈식 타일 장식)가 역 내부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데 이 아줄레주들은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 컷들을 떼어내어 표현해둔 것 같았다. 그 동안 유럽에서 멋진 기차역을 제법 보았는데도 또 감동해버렸다.



매사 너무 쉽게 감동한다. 감동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인데 그건 사실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소모가 큰 일이다. 게다가 그 방향이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부정적일 때도 있어서 괴로운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덜 그래 진다고 다들 믿고 있고, 나 또한 예전보다는 조금 그래지기도 했지만(그게 정말 나이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막상 그렇게 되고보니 그런 무덤덤한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더 어렸던 시절에는 앞으로 감동 따위는 없어도 좋으니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길, 그저그런 평범한 감정들만을 골라내어 옆구리에 끼고 살아갈 수 있길 그토록 바랬으면서, 이제와선 그게 싫다고 떠나가는 감정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징징대고 있다니 나란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는 비교적 쉽게 감동하고 있다.


아무튼 아베이루로 가려고 하니, 역무원이 말하길 이 역이 아니란다. 포르투-상 벤투 역이 아니고 포르투-캄파냐(Camphana) 역으로 가야 아베이루로 가는 기차가 있다고 하면서 지도도 한 장 쥐어준다. 여기부터 포르투-캄파냐까지는 한 정거장이니 별 문제는 없다. 보통은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까봐 이런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데, 워낙 사람이 없길래 간만에 관광객 모드가 되어 지도를 활짝 펼쳐보기도 했다. 몇 안되는 사람 중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역시 아무도 없다. 좋아, 완벽해.     


캄파냐 역에서 4~50분 정도 달려 무사히 아베이루 역에 도착했다. 상 벤투 역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긴하지만 아베이루 역도 제법 화려하다.      

아줄레주로 아베이루의 옛 모습을 표현했다



기차 역 바로 앞엔 운치 있게 생긴 건물이 하나 있는데, 아베이루의 특산 과자인 ‘오부스 몰레스(Ovos Moles)’를 먹을 수 있는 제과점이다. ‘부드러운 달걀’ 이라는 의미인 오부스 몰레스. 모나카를 닮은 얇고 빳빳한 반죽 안에 달걀 노른자를 설탕에 절인 듯한 '달걀잼'이 가득 들어있다. 달걀 특유의 비린 맛을 누르기 위해 설탕을 듬뿍 사용해서일까, 무척이나 단 맛이라 마냥 집어 먹을 수는 없을 듯 했다. 첫 입을 베어물고선 나도 모르게 ‘맛있다!’를 외쳤지만 결국 딱 두 알만 먹고 일어섰다. 쓰고 진한 커피와 함께였는데도 말이다.    

아베이루가 원조인 '오부스 몰레스'



기차역부터 마을까지 제법 거리가 있어 택시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돌바닥에 새겨진 문양들이 너무 귀여워서 구경을 위해 결국 걸어갔다. 발끝마다 이런 볼거리들이 가득한데 어찌 이것들을 모른 척하고 쌩하니 택시를 탈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렇게 매몰찬 성정을 가진 사람은 못된다. 그러니까 그깟 사람들과 그깟 일들에 상처받고 대륙 끝까지 떠밀려온 거겠지만.     

'물'과 관련된 상징들이 돌바닥에 줄줄이 이어진다


아베이루에선 몰리세이루 위에 앉아 운하 사이를 미끄러지듯 떠다니고 싶었지만, 예상보다 날씨가 찬데다가 하늘도 희뿌연게 별로일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유럽의 겨울날이었다. 물 위에서 유유자적 하는 대신 뚜벅이 여행자가 되어 마을의 곳곳을 구경했다. 운하와 몰리세이루가 아베이루 제 1의 매력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베이루에 그것 말고는 다른 볼거리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에 후회도 없었다.

     

아베이루를 ‘포르투갈의 베네치아’라고 부른다고 했지만, 내가 경험했던 베네치아와 아베이루는 많이 달랐다. 운하를 끼고 있는 집들은 베네치아의 집들보단 수수했고, 운하 위의 배들은 베네치아의 곤돌라보단 훨씬 화려했다. 몰리세이루 축제기간엔 더욱 더 꽃단장을 한다고 하니 대단한 볼거리가 될테지. 그러나 그 시즌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릴테고. 나는 조금 덜 구경하더라도 조금 더 한적한 것이 좋은 사람이니 지금 이런 모습의 아베이루도 좋았다. 그러니까 아베이루는 그냥 아베이루다.



아베이루를 둘러본 후엔 언젠가 여행 잡지에서 보았던 코스타 노바로 향했다. 코스타 노바는 아베이루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버스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어서 한 시간 정도를 정류장에 앉아있어야 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드디어 버스가 온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기사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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