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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Dec 24. 2016

기도하는 도시, 브라가를 걸었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4

근교 둘러보기에 재미가 붙어 오늘도 포르투 시내를 외면하고 기차를 탔다. 오늘의 목적지는 브라가. 브라가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예전엔 남유럽 가톨릭의 수도 역할을 했던 종교적인 도시라고 한다. ‘기도하는 도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라고. ‘기도’라는 말 자체에 반감부터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가톨릭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유럽에선 기본적으로 가톨릭의 내음을 많이 맡을 수 밖에 없다. 또 그렇게 ‘종교의 힘’이 반영된 유적과 유물들은 ‘그 시절에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 당연히 브라가에도 이런 종교적인 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을 것 같아 기대감이 풍선만큼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이래서야 걸어다닐 수도 없겠는걸 싶어 안절부절하다가 일단 대성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미사가 한창이다. 딱히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건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움찔. 아마 내 발걸음 소리와 내 카메라의 셔터 소리로 이런 분위기를 깨트리는 것은 엄청난 실례겠지. 때문에 예배당 안을 꼼꼼히 둘러보는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유럽에서 여러 성당들을 다녀보았지만, 실제로 미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 유독 포르투갈의 성당에선 그런 일을 많이 겪은 것 같기도 하다.     


대성당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미슐랭 스티커가 붙은 식당을 발견했다. 그런데 12시 정각 오픈이란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건 말건 조금이라도 봐주는 적이 없다. 날씨가 좋지 않으니 들어와서 기다리라거나 하는 식의 호의도 절대 베풀지 않는다. 이 집이 미슐랭 때문에 유달리 콧대가 높아서 그런게 아니라 포르투갈에서 만난 식당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런 면에선 한국의 가게들이 훨씬 친절한 것 같다. 요즘은 친절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것들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사실 서비스업도 어느 정도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는데, 아직 그게 잘 안되고 있지만. 물론 ‘손님은 왕’이지만, 그건 손님을 왕을 대하듯 대하라는 뜻이지 손님 스스로 왕 노릇을 하라는 말이 아닌데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 됐다. 서비스업에 잠시라도 몸 담아보면 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지. 호의를 베풀면 그게 권리인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 여기서까지, 맛있는 식사를 기다리면서까지 고국의 일들을 떠올리지는 말자. 그게 싫어서 도망친 것 아니더냐.     




지척에 수제 초콜릿 가게가 있어 초콜릿을 조금 먹으며 식당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에겐 일종의 깜짝 선물 같은 가게였다. 궂은 날씨에 찾아온 이방인들이 반가웠는지 카페의 언니(사실은 나보다 어리겠지만)가 커피를 내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무사히 점심 식사도 마쳤다.  




비가 조금 그친 것 같아 브라가 시내를 걸어보았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동네였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돌 때마다 크고 작은 성당이 한두개씩 꼭 나타났다. 이리로 걸어도 성당, 저리로 걸어도 성당. ‘기도하는 도시’다운 모습이었다. 이 날 마주친 성당이 대여섯개 정도 되었는데 브라가 시내에는 성당이 70여개나 된다고 하니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어야 하지만 놀라운 건 놀라운 것. 그 중 <아이돌 샘>을 무척이나 구경하고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곳만 문을 닫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얼른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될 '봉 제수스 두 몬트'로 향했다.     


△ 성당이 아니어도 브라가 시내는 충분히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봉 제수스 두 문트는 ‘산에 있는 예수’라는 뜻의 성당인데, 산 꼭대기에 있어 성당에 가려면 산을 올라야 하는, 방문 자체가 고행인 곳이다. 산 전체를 순례지라고 봐야할 정도인데 물론 한 걸음씩 직접 걸으며 회개해야하지만 내 다리는 소중하니까 푸니쿨라를 타기로 했다. 게다가 이 푸니쿨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력 푸니쿨라라고 하니 나의 탑승을 합리화하기에도 좋다. 물탱크에 물을 채워 그 무게로 객차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한쪽에서 물을 계속 뿜어내고 있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오래된 객차는 삐걱삐걱대면서 가파른 산을 잘도 오른다.      




너무 쉽게 꼭대기에 도착해서였을까, 성당은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지다기보단 그저 깔끔해보였다. 성당보다 성당 바깥쪽에 꾸며놓은 꽃밭이 더 눈길을 끌었다는건 비밀 아닌 비밀. 중앙의 예배당의 천장과 본(本) 제단이 한 개의 커다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에도 그저 ‘엄청 큰 돌이 있었나보구나’, 보통의 성당들과 달리 제단에 십자가 대신 테라코타 장식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도 ‘성당인데 십자가가 없구나’ 했을 뿐이었다.      




사실 봉 제수스 두 몬트의 참맛은 꼭대기에 있는 이 성당이 아니라 성당까지 도달하는 산길과 계단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그 길들을 보지 않고 푸니쿨라로 정상에 닿았으니까 감흥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본래 다리가 좋지 않아 산이나 계단을 무리하게 오를 수가 없는 몸이니 뭔가 억울하다. 그래서 내려갈 때는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기사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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