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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Dec 25. 2016

거기를 박차고 나온 것, 아주 잘했어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5

성당까지 이어진 이 계단을 ‘오감 삼덕의 계단’이라고 한다. 산 아래에서부터 오르다보면 이 계단에서 고난을 받다 받다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성당을 만나기 때문에 이 계단을 ‘천국의 계단’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우린 거꾸로 성당에서부터 계단을 내려갔다. 푸니쿨라를 통해 쉽게 정상에 닿긴 했지만 ‘깨달음’을 만난 것 같진 않다. 이제 ‘고난’을 얻을 때다.




계단은 양쪽이 대칭이 되도록 지그재그로 엇갈리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오르내리는 사람의 편의를 봐준다거나, 최단 경로를 구해 만들어진 계단은 절대 아니라는 의미이다. 계단 중간 중간 작은 샘(분수라고 하긴 어려울 작은 규모)들이 있고 조각상들도 늘어서 있는데 이 조각상들은 그리스도의 처형에 관련된 인물들이라고 한다.

     

어느덧 오감 삼덕의 계단을 모두 내려와 평지를 만났다. 이 곳에서 성당을 올려다보니 그제서야 이 성당의 매력을 알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계속 위를 올려다보는 일이니 꼭대기의 성당이 얼마나 경외로이 보였을지 그제야 알게 됐다. 헉헉대며 위를 올려다보면 성당이 저 멀리,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었겠지.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이제 다왔다’라는 생각에 얼마나 좋았을지,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 한단계도 내 마음대로 건너뛸 수 있는 구간은 없다는 점. 차근차근 한 계단씩 가야만 한다는 점. 적어도 이 곳에서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사다리 같은 것은 없다는 점도 나름 의미있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마치 어드밴처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같아 보였다. 계단은 무지 크고 높게, 사람은 개미만하게 보였다. 그 개미만한 인간들이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이런 걸 만들었다는게 새삼 대단하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계단이 끝이 아니었다. 정말 산 아래 평지까지 연결된 계단이 또 있었다. 이 계단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한다는데 그래도 경사가 가파르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갓 비가 그친 뒤라 공기도 촉촉하고 나무들도 우거져 삼림욕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걸었다. 중간중간에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요정의 집을 닮은 성소도 있었다. 성소의 지붕이 푸른 이끼로 뒤덮인걸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기분도 조금은 들고.



걷다보니 어느덧 닿은 출구. 우리가 거꾸로 왔으니 우리에겐 출구지만 사실 이곳은 수도원으로 가는 입구이다. 대주교의 문장과 1723년에 예루살렘을 재건했다는 글귀가 있다. 아아,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종일 축축한 공기 속을 걷고, 비를 맞다 포르투로 돌아오니 만사가 다 귀찮다.


이럴 땐 맛있고 건강에 나쁜 정크 푸드를 먹어줘야 해!


라는 생각에 상 벤투 역 옆의 맥도날드를 찾았다. 그런데 이 맥도날드가 범상치 않다. 내가 알던 그런 뻔한 맥도날드가 아니다. "포르투 사람들은 정크푸드도 이런 아름다운 공간에서 우아하게 먹나요?" 싶어 심술이 난다.




포르투갈에서만 판매하는 메뉴라는 CBO 버거를 주문했다. CBO 버거는 Chicken, Bacon, Onion 버거라고 하는데 버거라기보단 샌드위치의 느낌이 났지만 사실 그 둘의 차이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면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걸 일일이 다 따지면서 산다는 건 어쩌면 피곤한 일이지만, 아예 ‘분별’ 자체를 하지 않는건 싫다. 버거이든 샌드위치이든 그런 건 소소한 일이고 별 중요한게 아니지만, 적어도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정도는 생각하며 살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 피곤함은 기꺼이 감수해야할 일이다.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아주 유명한 얘기가 있다. 하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은 그나마 낫다. 아예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정말 편하다. 슬퍼할 일도 분노할 일도 없으며 부당함에 억울함을 느낄 일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보면, 매사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조종당하고 이용당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까 거기를 박차고 나온 것, 아주 잘했어.




이런 일은 안되는 것 아닙니까? 아주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보통 잘못된게 아니라구요.

라는 말을 끝까지 못하고 나온게 조금, 아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기사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4. 판사님, 마지막 대사는 가라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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