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거와 제주살이"의 시작

by 나예

넓게보아 모든 글은 내 이야기를 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에세이는 좀 더 직접적이다. 에세이가 보편화될 수 있는데에는 이런 성질의 영향이 큰데,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보편화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의외가 아닐지도. 사람이란 대개 그런 존재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대부분의 기성출판물들 또한 100% 저자의 이야기로 꾸려지지는 못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돈이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위주로 책을 쓰려면 독립출판으로 가는게 현실적인데 그 또한 단순히 물성을 지닌 '책'을 만드는데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남에게 읽히고 남에게 팔리는데에 의의를 둔다고 하면 역시 쉽지 않다. 내가 쓰고 싶은 책과 남이 읽고 싶고 더 나아가 사고 싶은 책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기에 이런 류의 글은 저자에 관한 팬심이 어느 정도 있어야 비로소 읽히고 더 나아가 팔리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내 최근작들을 기준으로 나는 나의 내밀한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닥 크지는 않은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은 대개 담백하고 깔끔하다는 평을 받는데 그 평은 이런데서 온 것일거라 추측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것 또한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 인간 구질구질 구구절절 화신이네' 싶을지도. 그렇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들어본 적은 아직까지는 없다.



'한달살기' 등은 펜데믹 이전부터 꽤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였다.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시아가 그 대상이었는데 치앙마이 등은 관련하여 굉장히 핫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 또한 이런 일을 해보고는 싶었지만 쉬이 실천하지 못하던 차에 펜데믹이 덮쳤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이후 2년여의 기간을 잘 버텼다.


하지만 아이는 클수록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못견뎌했다. 이 타이밍은 오미크론이 창궐하던 시기와도 묘하게 맞물렸다. 딱히 '명의'라고 소문나지도 않은 조그만 동네 소아과에 대기 환자가 50명씩 몰렸다. 진료를 보려는 줄은 복도와 계단을 지나 건물 바깥까지 이어졌다. 전부 오미크론 확진, 혹은 오미크론 의심 환자였다. 우리는 오미크론이 이 펜데믹의 마지막 관문이기를 소망하며 전염병을 피해 제주로 갔다.


제주 사람들은 이 포인트에서 분노할지도 모른다. 육지에서 다 이쪽으로 와서 되레 청정제주에 전염병을 퍼트렸다고, 여기가 니들 피난하라고 있는 곳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궁색한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는 제주에 적이 있다. 남편이 제주 사림이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본가의 그 돌담 시골집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어느덧 담장 안까지 오미크론이 넘어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도의 숙소를 잡고 거기서 지냈다.


거거와 함께 제주에서 보낸 22년 봄에 대해 기록하겠다고, 이 한 마디를 쓰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아무래도 난 구구절절 화신이 맞는 듯. 귀엽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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