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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08. 2017

비밀스러운 정원과 별장을 거닐며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27

주차를 위해 주변을 헤메는 동안 해는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두군데나 더 들러야하는데, 이러다간 문을 닫겠어!’ 싶어 마음이 급했지만 현실적으로 차를 세울 곳이 없으니 발만 동동 굴렀다.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간신히 헤갈레이아 별장으로 들어섰다.


헤갈레이아 별장은 커피와 보석 무역으로 거부가 된 안토니우 몬테이루가 헤갈레이아 남작의 저택과 정원을 구입한 후 자기 취향에 맞게 개조한 곳이다. ‘이런게 모두 개인 소유라니 역시 돈의 힘은 위대해’ 싶은 장소인데 사실 별장보다는 정원이 더 독특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린 그 사실을 잘 몰랐던데다가 구경할 시간도 부족해 ‘별장과 별장 근처의 정원만 후딱 둘러보고 가자’ 라는 바보 같은 전략을 세웠다.


때문에 미로 같은 정원의 이곳 저곳을 연결하는 인공동굴도, 빙글빙글 돌며 계단을 올라야한다는 원통형 9층탑도 모두 놓치고 말았다. 특히 탑은 가짜 돌문 뒤에 숨겨져 있어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비밀 장소의 느낌이라는데 아쉬울 따름이다.(나중에 ‘그 별장은 그게 전부인데 그거 안보고 뭐한거야!’ 라는 소리도 들었다) 물론 이런 관람 포인트들을 미리 알았다 해도 정원은 엄청나게 넓고 우린 시간이 부족했으니 어찌할 바가 없었으리라. 이 곳은 여유로운 날에 하이킹을 하듯 한참을 걸으며 구경해야하는 그런 장소였다. 고로 우리의 작전은 완전한 실패였다.


설상 가상으로 별장은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외관은 도도하고 멋진데 비해 내부는 의외로 평범한 가정집의 느낌!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 말고는 별게 없는데다 위층은 공사중인 상태였다. 정원 중에서 하이라이트인 부분을 보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별장도 그저 그렇다니. 어쩌면 안토니우는 나름의 모험을 즐기며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는, 하지만 편안한 보금자리를 원했던 ‘소년’을 닮은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고 내 멋대로 상상해보았다.

여유롭게 거니는 고양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몬세라트까지 둘러보고 나면 계획했던 오늘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된다. 이 곳 또한 헤갈레이라 별장만큼이나 넓고 비밀스러운 정원이 매력적인 곳인데 이번에도 시간 관계상 정원을 만끽할 수 없어 또 다시 아쉬웠다. 이 곳의 정원은 대강 아무 나무나 풀들을 심어 놓은 것이 아니라 각 장소마다 테마에 맞게 컨셉을 잡고 꾸며놓은, 일종의 수목원 느낌이 났기에 그 아쉬움이 더 컸다. 이채로운 풍경 덕분에 영화 촬영 장소로도 많이 쓰였다고 하는데 별장까지 가는 길과 닿아있는 곳들만 단편적으로 둘러보아도 꽤나 정성껏 가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별 매력이 없었던 헤갈레이라의 별장과는 달리 이곳의 별장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섬세했다는 점이다. 내부의 장식들은 식물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 별장 자체가 또 하나의 정원처럼 같기도 했고 이국적인 풀과 나무들로 가득한 바깥의 진짜 정원과도 잘 조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인도에 가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이곳의 패널들은 인도의 양식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이슬람 양식에서 따온 장식은 많이 보았어도 인도식 장식은 처음 보았는데 이슬람 양식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소 생경하게 느껴졌다.

 

피곤할 정도로 빡빡했던 신트라에서의 하루를 마감하고 리스본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미리 정해놓지 않았어서 일단 강변의 푸드코트인 time out market으로 향했다. 이곳에 입점한 가게들은 대부분 리스본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이고 대표 메뉴 위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뭘 골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인기 많은 가게들만 모아놓은 곳이지만 이 안에서도 사람이 더 몰리는 곳과 덜 몰리는 곳의 차이가 큰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하다. 학생시절에 경험했던 우열반의 느낌이랄까. 고민 끝에 우리가 고른 것은 돼지고기 요리였다.


여태까지는 다른 지역들을 구경하느라 정작 리스본을 꼼꼼히 둘러보지 못했다. 내일부터는 리스본 시내 구석구석에 우리의 발자국을 찍어야지.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겠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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