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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06. 2017

신트라의 보물 상자, 신트라 궁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26

지친 다리를 잠시 쉰 후엔 원뿔을 닮은 커다란 쌍둥이 굴뚝으로 대표되는 신트라 궁으로 향했다. 큰 기대 없이 신트라에 왔으니까, 그리고 빵집 바로 앞이니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던 신트라 궁은 알고 보니 볼 거리가 넘쳐나는 일종의 보물 상자 같은 곳이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아줄레주들을 직접 구경할 수도 있고 곳곳에 이슬람의 흔적도 남아있어 여지껏 만났던 유럽의 다른 궁전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에, 풍기는 분위기도 다채로웠다. 오전에 만났던 켈루스 궁에선 용도에 맞게 잘 꾸며진 공간들이 매력적이었고 페나 성은 알록달록한 외관이 멋졌다면 신트라 궁에선 각 방의 천장 장식과 아줄레주 장식에 흠뻑 빠져버렸다. 

△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모두 미묘하게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신트라 궁은 외관보다는 내부 장식이 더 멋진 곳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집중해 봐야할 것들은 거의 천장 장식이라 신트라 궁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한껏 고개를 젖히고 카메라를 위쪽으로 처들고 있었다. 모두 똑같은 포즈로 똑같은 사진을 찍는 것 같아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누구라도 그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 곳의 천장들은 흥미로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27마리의 백조들이 팔각형의 프레임 안에 그려져 있는 ‘백조의 방’. 우아한 백조들이 각각 다른 포즈인 걸 보니 무척이나 정성을 들여 장식한 것 같았는데 왕비가 시집간 딸을 위해서 꾸민 방이라고 한다. 176마리의 까치가 천장에 그려진 ‘까치의 방’도 있는데 ‘백조의 방’보다 미적인 면에선 조금 떨어지는 것 같지만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역시 인기가 있다. 주앙 1세가 한 하녀와 입 맞추고 있는 모습을 왕비에게 들킨 후, 이는 순수한 마음에서 행한 ‘선을 위한 행위’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른 하녀들 역시 이 ‘선한 행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며 하녀의 수만큼 천장에 까치(까치는 순결의 상징으로 쓰였다)를 그리게 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까치의 수는 그 당시 하녀의 수와 일치한다고.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와 비둘기가 빼곡히 그려진 왕실의 예배당,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의 갤리온의 방도 제법 독특해 재미있게 둘러보았다. 짧은 시간 동안 비슷한 것들을 많이 보게 되면 나중엔 ‘그게 그거’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신트라 궁에서 본 것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라 내내 신기하고 즐거웠다.

크리스탈로 장식된 거울은 무척 화려하다


신트라 궁에서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공간은  ‘문장의 방’이다. 문장의 방은 황금빛 천장 장식과 백자를 닮은 푸른 아줄레주가 함께 어우러진 곳으로, 구경하는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화려했다. 사진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무척이나 번쩍번쩍해서 일종의 압도감이 느껴진다. 왕의 문장과 8명의 자녀들의 문장, 용맹한 수사슴의 모습이 순서대로 표현되어있고, 그 주위를 16세기 당시 주요 가문의 문장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히려 실망스러웠던 곳은 부엌. 궁 내부에서 만나본 진짜 부엌은 바깥에서 보았던 독특하고 커다란 굴뚝과는 달리 다소 평범한 모습이었다. 네모 반듯한 건물들 사이에서 쑥 올라와있는 원뿔형 굴뚝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만 그 크기만큼은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때문에 연기가 잘 빠져 궁 안에서는 음식이나 연기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히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신트라스러운’ 곳을 딱 한 군데만 추천하라고 하면 페나 성보다는 신트라 궁을 추천하겠다. 귀엽고 예쁘기는 페나 성이 제일일지 몰라도 신트라 궁은 포르투갈에 유일하게 남은 중세의 왕궁답게 오래된 이야깃거리들로 가득하다. 눈에 띄는 화려함보다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심성을 지닌 것에 우리는 오늘도 감사한다.


구경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울창한 언덕 위에 크고 작은 집들이 놓여있다. 이 두 사진이 담고 있는 풍경이야말로 신트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풍경인 것 같다. 신트라에 대해 이제야 약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섭섭하게도 이미 낮 시간이 많이 지났다. 겨울엔 해가 짧으니 다음 장소로 가는걸 서둘러야겠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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