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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02. 2017

알록달록 페나랜드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25

차를 타고 꼬불꼬불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산기슭을 기어오르니 신트라 제 1의 명소인 페나 성의 입구가 보인다. 하지만 말로만 입구일 뿐, 사실은 여기서 입장권을 끊고도 한참 더 산을 올라야 진짜 페나 성을 만날 수 있다. 긴가민가하며 미니 버스 티켓을 추가 구매해 미니 버스를 탔더니 꽤 오래 산비탈을 오른다. 그제서야 성은 산 꼭대기에서 알록달록한 빛깔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참으로 만나기 힘든 녀석이다.


강렬한 원색을 뽐내는 페나 성은 차분하고 고즈넉한 고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만화나 동화 속에 나오는 성이라고 하기에도 조금은 어색한, 사실 성이라기보단 하나의 놀이동산 '페나랜드' 같아 보일 정도였다. 인형탈을 쓴 사람들이 몰려나와 꼬맹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풍선을 쥐어줄 것 같은, 그런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곳 말이다. 색은 그렇다치고 건축물의 모양새만 놓고 봐도 유럽의 다른 고성들에 비해 왠지 모르게 조금은 귀엽고 어설픈 맛이 났다. 때문에 마치 테마파크에 대강 구색을 맞추려 지어놓은 가짜 성처럼 몹시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밝은 색감이 주는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성 전체에 배어있어 밉지 않았다. 슬쩍보면 다소 유치하지만 또 달리보면 신기하다. 왜 그 시절의 다른 성들과 달리 유독 페나 성만 이토록 요란한 색일까. 이것은 아마도 성 주인의 취향이겠지. 어찌보면 시대를 앞서간 화려한 색채 감각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페나 성은 19세기에 페르난두 2세가 16세기 즈음에 세워진 수도회 건물을 매입하여 확장 및 개조한 곳이다. 심지어 독일에서 초빙해온 건축가에게 작업을 맡겼다고. 하지만 이곳은 그런 구구절절한 역사보다는 화려한 색상의 탑과 건물, 양파를 얹어 놓은 듯한 돔, 약간은 이슬람스러운 발코니 등 특유의 개성 있는 겉모습 덕에 인기인 곳이다. 돌출된 커다란 창에 매달려있는 트리톤 또한 눈길을 끌었는데 마치 트리톤이 성 전체를 떠받쳐 들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트리톤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세상의 창조를 상징한다고 한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사진이 잘 나올 곳임이 분명하다


성의 안쪽에는 트릭 아트로 꾸며놓은 방과 마누엘 양식의 회랑, 왕실 사람들이 사용했던 예배당, 고급스러운 유리 그릇들과 전기 촛불을 들고 있는 터키인의 형상, 72개의 촛불을 품을 수 있는 금빛 샹들리에 등 제법 볼 거리가 있었는데 좀 전에 켈루스 궁전을 실컷 보고 와서 그런지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결국 우리에게 페나 성은 안쪽보단 바깥쪽이 훨씬 인상적인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벽에 조각을 새기는 대신 그려넣은 일종의 트릭아트 장식




신트라는 달콤한 과자류로도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것은 케이자다와 트라베세이루라고 한다. 이들을 맛보기 위해 페나 성에서 내려오자마자 샛노란 간판이 달린 빵집부터 찾았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있으니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빵집으로 몰려들었다. 깃발을 든 가이드가 케이자다와 트라베세이루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을 하는걸 보니 정말 그 두 빵이 신트라의 명물이긴 한 것 같다. 


케이자다는 타르트 비슷하게 생겼는데 치즈와 시나몬이 들어간 맛이었다. 요즘 인기인 일본식 치즈 타르트만큼 촉촉하거나 치즈가 주르륵 흘러내릴 듯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대신 스폰지 케익의 식감에 가까웠다. 트라베세이루는 ‘베개’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길쭉하고 폭신한 것이 정말로 베개를 꼭 닮았다. 둘 다 별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생긴 대로 무척이나 포근하고 소박한 맛이어서 커피와 함께 하며 잠시 쉬어가기에 좋았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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