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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01. 2017

궁전이 우리의 환상을 자극하는 이유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24

조금 지치는 감이 있는데 요 며칠 계속 근교를 돌면서 여행을 하는건 렌트카를 반납할 날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내일 오전 중에는 차를 반납해야하니 이제는 좋든 싫든 진정한 뚜벅이 여행자가 되어야한다. 그러니까 오늘로서 근교 투어도 마지막이다. 오늘은 켈루스와 신트라, 두군데에 가보기로 했다. 보통 신트라와 카스카이스, 카보 다 호카를 모두 합쳐 당일치기(세 지역을 연계하는 통합권도 있다)로 돌아본다고 하니 우린 그보단 훨씬 여유롭게 다닐 수 있겠지 싶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낭만적으로 얘기하자면 생각보다 신트라에 볼 거리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신트라라는 동네 자체가 아주 오래된 동네여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맞는 길이야?’ 싶을 정도로 좁고 꼬불거리는 길들은 골목이라 표현하는 것도 아까울 정도였고 주차할 곳도 거의 없었다. 유료 주차장은 당연히 만차에 약간의 틈바구니만 있어도 다들 비집고 차를 밀어넣어두었기에 자리가 날 때까지 마을을 빙글빙글 몇 바퀴나 돌아야 해 이 부분에서 시간 소비가 컸다. 

이 정도 길은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엄살 아님!


차를 신경쓰지 않는 보행자들도 많아 운전을 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그렇다고 해서 ‘신트라엔 꼭 대중교통으로!’라고 설명하자니 그것도 다소 애매하다. 리스본에서 신트라까지 이동하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신트라에서 꼭 가봐야 한다는 곳들이 다들 제법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신트라의 상징 격으로 불리는 페나성이나 무어성은 산꼭대기에 있는데 그날 하루를 등산에 오롯이 투자한다면 모를까, 웬만큼 걸어서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물론 대중교통편으로도 닿을 수는 있지만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 정류장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배차도 듬성듬성해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으면 단단히 일정이 꼬일 가능성이 있다. 여행에 정답이란건 없으니 결국은 각자의 취향 문제겠지만 우리가 만약 다시 신트라에 갈 수 있다면 그 때도 역시 렌트카를, 대신 당일치기가 아니라 숙박을 하며 좀 더 천천히 돌아보는 쪽을 택하겠다.

무어인의 성은 산꼭대기에서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


신트라에 가기 전, 우선은 포르투갈의 베르사유로 불린다는 켈루스 궁전을 찾았다. 켈루스 궁전은 왕가의 여름용 궁전이었는데 리스본 대지진으로 리스본 시내에 있던 궁전이 무너진 이후엔 이쪽이 아예 왕의 거처가 되었다고 한다. 정확히 하자면 코르메시우 광장에 있던 원래 궁전이 파괴되고 벨렘 쪽에 아주다 궁전을 지어 이주했다가 이 궁전도 큰 화재로 망가지면서 결국은 이쪽으로 왔다고. 사실 여름용 궁전은 여름 한철 머무르며 더위를 식히고 가는 별장에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인지 정원과 분수 등을 정성껏 꾸며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궁전은 내부도 외부도 무척이나 예뻤다. 로코코 양식으로 신경써서 꾸몄지만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궁전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똑같거나 비슷한 방은 하나도 없었는데 제각각의 방들이 과하지 않게 딱 ‘세련되다’ 싶을 정도로 꾸며져있어 참 좋았다. 이렇게보니 마냥 화려하게 치장한 것보다는 깔끔한 쪽이 조금 더 내 취향인 듯 하다. 물론 아주아주 화려한 공간도 몇몇 있긴 했지만 그래도 프랑스나 스페인의 다른 유명한 궁전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수수한 편에 가깝다. 


궁전의 방들은 잠을 자는 곳,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곳, 화장하는 곳, 회의하는 곳, 밥을 먹는 곳 등 용도가 모두 나뉘어있는데 단순히 부를 과시하고 사치스러움을 뽐내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궁전은 직접적인 생활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업무도 봐야하는 곳이기에 더욱 더 공간의 분리가 필요한 곳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듯이 침대에서 밥을 먹고, 식탁에서 숙제를 하면 집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궁전이 우리의 환상을 자극하는 이유는 그 화려함보다도 공간들이 깔끔하게 잘 분리되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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