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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20. 2017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마주친 낯익은 언어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34

포르투갈에서, 특히 리스본에서 대항해 시대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일거다. 리스본이라는 도시 전반에는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남아있다. 지금의 리스본, 그리고 포르투갈은 유럽 가장 끄트머리에 붙은 그저 그런 작은 나라일 뿐이고 화려했던 과거는 모두 옛말이기에 이 동네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을 더 사무치게 그리워하는건지도 모른다. 왕년에 한 번쯤 잘 나간 적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예전에는 말이야’ 라는 말로 말문을 여는 것이 꼰대들의 대표적인 특징이건만, ‘어휴, 저 꼰대들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있네. 쯧쯧’ 하고 비아냥거리자니 그것도 속이 편치만은 않다. 


리스본엔 아직도 그 시절의 위용을 품은 채 남아있는 것들이 많고 그 대부분은 벨렘 지구에 있다. 때문에 마냥 촉촉했던 구시가지와는 달리 벨렘은 좀 더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중에서도 벨렘의 상징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의 걸작이자 대항해시대 그 자체로 불린다. 그 만큼 볼거리도 풍성하기에, 포르투갈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많은 관광객을 만난 곳도 이곳이었다.


수도원은 입구에서부터 코바늘로 뜨개질한 레이스 장식을 닮은 조각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흐드러진 아름다움을 뽐낸다. 금을 발라놓은 것은 아니어도 이렇게 지으려면 무척이나 많은 돈이 필요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 수도원을 짓는데 필요한 돈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후, 인도에서 가져온 향신료 무역을 통해 충당했다고 한다.


수도원에서 가장 대단하다 싶은 공간은 회랑이다. 꼬인 밧줄과 혼천의 등 그 시절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가득한 회랑은 마치 상아나 미색을 띠는 산호초로 정성껏 깎아 놓은 듯 보였다. 사실은 석회암일 뿐이지만 무척이나 고급스러워서 한갓 돌로 이렇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돌이 아니어야 할 것만 같은, 이런 게 돌일 수는 없어!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유럽이라는 커다란 이름 아래 많은 것들이 비슷해 보인다. 특히 건축물이 그렇다. 고딕 양식이니 로코코 양식이니 하는 말도 어딜 가나 계속 들을 수 있어 '결국은 다 그게 그거군'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장식, 마누엘 양식은 포르투갈이 아니면 볼 수 없다.

회랑을 따라 선원과 순례자들이 고해성사를 했던 12개의 방들도 그대로 남아있다.


회랑이 워낙 압도적이다보니 회랑만큼은 아니지만, 성당 또한 멋졌다. 성당을 떠받치는 기둥들은 마치 제멋대로 쑥쑥 자라난 나무 같았다. 나무가 자라나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천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혹은 버섯의 기둥과 머리의 연결 부분 같기도 했다.


성당은 성당 자체보다도 시인 카몽이스와 바스코 다 가마의 석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이 두 석관들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게 조각되어있다. 이전에 보았던 알코바사의 석관들과는 또 다른 매력. 알코바사의 석관들이 그 자체로서 마냥 아름다웠다면 이쪽의 석관들은 어떤 석관이 누구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그 주인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카몽이스의 석관에는 음유시인다운 면모를 자랑하듯 월계관과 악기, 펜이 새겨져있고 바스코 다 가마의 석관에는 십자가와 배, 혼천의가 표현되어있다.


성물 안치소에는 제로니무스의 생애를 표현한 유화들이 나란히 걸려있었으나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제로니무스는 히브리어로 되어있던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자 사자 앞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준 일화로 유명한데, 이쪽 그림들 속에 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회랑을 거닐며 한창 감상에 젖어있는데, 낯익은 언어가 들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타인의 한국어였다. 친구인지 직장 동료인지 모를 두 아가씨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날 흘겨보며 들으란 듯 말했다. 


한국인이야, 짜증나

그들은 나의 존재 자체가 거슬렸던걸까? 무슨 행동이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포르투갈이 좋았던 것은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모든 종류의 한국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기에.. 무척 좋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직 한국에 돌아가기엔 이른 듯 싶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그런 말은 부디 내가 못 알아들을 다른 언어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국인인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국어로 하다니, 대체 그 둘은 무슨 생각이었던걸까. 지금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4. 뒤늦게 저것들이 미쳤나 싶었지만 그녀들은 이미 날 스쳐 지나간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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