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보면 알지, 내 몸이 얼마나 엉망인지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36

by 나예

어제 우중충한 날씨와 대적하며 무리를 해서인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상을 떠나있다고 항상 상쾌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고 몸이 축 늘어지는 것 같다. 회사에 다닐 땐 물론 피곤하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래도 혹사하는 것에 비해서는 크게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도리어 쉬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골골이다. 그동안 미뤄놨던 각종 병들이 이제 때가 됐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며 번호표 순서대로 다녀가는 느낌. 아직도 나의 면역 체계는 월말의 은행창구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그때는 정말로 멀쩡해서 멀쩡했다기보다도 내내 긴장하고 사느라 아플 틈도 없었던게 아닐까 싶다. 주말에 조금 쉬는 것으로는 딱히 회복이 되지 않았던 것 같고, 연휴라든가 며칠 연달아 쉬고 나면 도리어 컨디션이 더 안 좋곤 했다. 누군가는 그걸 휴일이라고 너무 방탕하게 무리하면서 놀아서 그래, 라든가 연휴(혹은 명절) 증후군이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제서야 긴장이 조금 풀리며 몸이 회복되려고 하는 찰나 다시 출근을 하는 바람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맹세하는데 그렇게 병날 만큼 무리해서 놀아본 적은 내 삶에 없다. 난 잘 노는 것보다 잘 쉬는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호텔 직원들이 내 방을 청소해주고 이불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하려면 내가 방을 비워줘야한다. 물론 방해금지 푯말을 걸어놓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긴 싫다. 어차피 일상으로 돌아가면 질리도록 청소해야하는데 남이 청소해준다고 할 때 누려야지. 몸을 일으켜 대강 준비하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리스본에는 오래된 카페들이 제법 많다. 오늘의 첫 번째 카페는 1829년에 문을 열었다는 콘페테리아 나시오날. 크리스마스 케익인 볼루 헤이를 처음 만들어 유명해졌다지만 이제 그건 큰 의미가 없는 듯 하다. 우선 볼루 헤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잠깐 볼 수 있는 녀석이라 만나기 쉽지 않다. 운 좋게 만났다 해도 조각으로는 팔지 않아서 선뜻 시도하기도 어렵다(크기가 제법 큼). 그리고 지금은 꼭 이 집이 아니라 다른 빵집에서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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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볼루 헤이 그 자체보다는 이 곳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동안 계속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온 곳이라는 점에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워낙 유명하고 인기있는 곳이라 빵들의 가격도 조금은 비싸고 직원들은 무척이나 도도하다. 직접 먹어보니 짠 빵보다는 단 빵(포르투갈 식으로 표현하자면 ‘볼루’)이 더 맛있는 집이었다. 볼루 헤이를 개발한 곳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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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한 잔 마셨건만 몸의 뻐근함이 해결이 안 되었다. 이럴 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카페 브라질레이라로 가는 것. 이 곳은 1908년에 문을 연 이래 예술가와 문인들의 사랑을 담뿍 받은 곳이자 특히 페르난도 페소아가 사랑해 마지않아 자주 들렀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사실 그가 더 자주 방문했던 곳은 코르메시우 광장에 있는 다른 카페다. 그런데 이쪽에서 청동상까지 만들어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바람에 선수를 뺏긴거다. 넓게 보자면 여기도 자주 온 곳 중 하나라고 하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기도 하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유일할 필요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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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브라질레이라는 리스본에서 처음으로 브라질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판매한 곳이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그간 심하게 시달렸던 걸 생각하면 이 카페가 여전히 이런 간판을 달고 있는게 좀 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카페는 이날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1유로면 엉덩이를 붙이고 비카를 한 잔 마실 수 있는데 이 집 커피는 무척이나 쓰고 진하다. 원두가 달라서인지 이 집만의 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색도 좀 더 까만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내 몸이 잠에서 깨어났다!


쉬어보니 알겠다. 그 동안 내 몸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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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1.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잠시 찍고 가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 매거진 제목은 가토 다이조 著,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3. 이 이야기는 저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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