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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Nov 01. 2023

나는 왜 네가 싫을까

그게 참 커리어스(curry-ous)해

처음 알게 된 사람과 밥을 먹다 보면 한 번쯤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나는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 방그레 웃으며 아, 어떡하죠, 못 고르겠어요-하며 어울리지 않는 아양을 부린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마주한다.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뭐예요?”


바로 앞선 질문에서 행복한 순위 매기기를 만끽한 나는 이 질문에게는 주저함이 없다. 내 대답은 시종일관 이랬다. “카레요”. 싫어하는 음식들, 예를 들어, 심하게 삭힌 홍어, 고수가 잔뜩 들어간 쌀국수, 현지에서 파는 맛과 냄새 그대로인 취두부처럼 미처 친해지지 못한 이국의 유산들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제치고 싫어하는 1순위는 늘 카레였다.

다들 묻는다. 카레를 왜 싫어하냐고. 이번에도 대답은 늘 똑같다. 그냥 다 싫어요. 생김새도 싫고 냄새도 싫어요. 아마 맛도 싫어할 걸요.


‘아마’ 맛도 싫어할 거라는 대답에는 맛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카레와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렇다. 먹어보지도 않고 대뜸 싫다는 게 아니다. 다만, 카레와의 악연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 의하면, 대략 초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처음으로 학년 전체가 다 같이 수련회를 온 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구호를 외우고 모자를 쓴 교관들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급식으로 받은 밥과 카레를 식판에 담아 들고 자리에 앉아 처음 한 술을 뜨는데 역한 냄새가 올라와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용기를 내어 교관에게 다가갔다. 도저히 다 못 먹겠는데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을 하려는데 교관이 나를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수련회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규칙을 적어 놓은 안내문이었다. ‘배식받은 밥과 반찬은 다 먹는다.’ 교관은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어야만 단체 기합을 받지 않을 거라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식판을 다시 들고 돌아온 나는 억지로 카레를 욱여넣었다. 그리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재빨리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게 마지막 카레였었다.


그 후로도 급식이나 단체 식사 시간에 카레를 먹어야 할 위기(?)가 몇 차례 더 있었다. 그때마다 카레 소스를 다 걷어내고 맨밥만 먹었다. 카레와 함께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는 구원의 맛이었다. 미처 걷어내지 못한 카레 소스가 밥에 살짝 묻어 있으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한 숟가락을 단숨에 꿀꺽 삼킨 뒤 깍두기를 물었다. 그러곤 깍두기를 사탕처럼 입안에 굴리며 주문을 외웠다. 이건 카레라이스가 아니야. 이건 깍두기 라이스야. 몇 초 만에 깍두기밥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면 울렁거리면 마음도 이내 편안해졌다.


촘촘한 감정이어도 빈틈은 있는 법.


그날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한 집에 모였다. 절친한 또래 중 한 아이의 엄마(아이는 J이모라고 불렀기에 나도 그 호칭을 빌린다)가 최근 아이방을 수리했다며 흔쾌히 집에 초대한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키즈 카페를 찾아갈 필요 없이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 모여 놀이 삼매경이었고 엄마들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저마다 준비해 온 다과를 펼쳐 놓고 여고생들처럼 수다에 빠졌다. 다과는 금방 동났고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아, 엄마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J이모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앞치마를 입고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녁 차리는 게 번거로우니 일찍 가겠다는 엄마들을 만류하며 J이모는 간편한 메뉴이니 마음 쓰지 말라고, 그저 나누던 대화를 계속하라고,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면 앉히고 또 앉히는 것이었다. 에잇, 몰라요. 그냥 뻔뻔한 손님처럼 일단 앉아 있을게요-하며 짐을 다시 내려놓은 손님들은 사실 배가 고팠다며 슬슬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J이모는 흐뭇한 표정으로 손질된 고기와 감자, 양파, 당근, 호박을 먹기 좋게 썰더니 커다란 냄비 팬에 담고 요리유를 넣어 볶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재료들을 손질해 능숙하게 팬으로 볶아내는 그녀의 솜씨와 재료가 적당히 볶아 풍기는 냄새에 취해 침을 꼴깍 삼켰다. 요리 내공이 엄청나다는 칭찬과 함께 오늘 저녁 메뉴가 정확히 무엇이냐 물으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카레요.”


“어머, 카레 좋지요.” 본인들은 물론,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메뉴 선정마저도 센스가 넘친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나만 빼고. 나 또한 친절하고 요리 잘하고 센스마저 넘치는 J이모에게 한 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카레-라는 단어에 얼어 버린 채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카레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려해야 할 복잡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가장 먼저 고민에 빠진 건, 과연 카레를 먹지 못한다고 고백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이었다. 초대받아 간 집에서 아이들도 하지 않는 반찬 투정을 하는 아이 엄마라니. 카레가 싫어서 못 먹는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하다 가도, 다른 걸로 따로 차려 달라는 요구로 들릴 것 같아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는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바람에 J이모는 어머, 많이 시장하신가 봐요, 서두를게요-라며 가스 불을 올렸고 텅 빈 위장도 울부짖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며 결국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거짓말도 포기했다. J이모는 열명이 넘는 손님들을 책임질 요리라서 제철 야채와 생고기로 만든다고 맛있게 먹어 달라고 애교를 날렸고 그럴수록 내 속은 더 답답해졌다. 혹시 지금이라도 용기 내서 고백하면 저 고기와 야채 일부를 카레가 아닌 다른 요리로 바꿔주지 않을까. 팬에서 풍기는 향은 완벽했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팬에 담긴 볶음들을 그대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손가락을 톡톡 치며 우물쭈물 거리는 찰나, 이 집 막내가 주방으로 다가왔다.

“엄마, 무슨 요리해요?” 팬을 보더니 막내는 우와-소리를 지르며 재빨리 팬트리에서 봉지를 꺼내 건넸다.

“엄마, 빨리 카레 가루 넣어요. 빨리요.”


재료를 가져와 칭찬을 받은 막내는 자기가 엄마를 돕는 천사라며 본인이 직접 카레 가루를 팬에 넣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전래동화 삽화에서 본 아기 도깨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된 밥에 흙을 넣는 도깨비. 카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도깨비는 신난 표정으로 노란 흙가루를 팬에 탈탈 털어 넣었다. 나는 깨달았다. 카레가 아닌 다른 메뉴를 더는 기대할 수 없음을. 오늘의 저녁 메뉴는 오로지 카레인 거다. 고소한 볶음 냄새는 도깨비 가루를 만나 살짝 매콤하면서 진한 냄새로 서서히 바뀌었고 내가 도망 다니며 상상했던 냄새, 대략 진한 노란색과 연한 초록색을 섞은 빛깔이 담고 있는 고유한 냄새라고 믿은 그것이 온 집안에 퍼졌다. 살면서 카레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재료 손질부터 카레의 완성되는 과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본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저녁 밥상은 한우와 제철 야채로 만든 카레라이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모두가 한 접시씩 앞에 놓고 동시에 수저를 드는 모습이 수련회 때 첫 카레를 먹은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내 앞에도 모던한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카레라이스가 놓여 있었다. 이제 최후의 결정을 해야 했다. 먹느냐, 마느냐, 정말 문제 중의 문제를 주저하는 나에게 도깨비처럼 다시 다가온 막내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모, 저도 같이 만든 카레예요. 맛있게 드세요.”


오, 이런. 이렇게 사랑스러운 얼굴로 건네는 카레라니. 카레 냄새도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10인분의 카레가 뽐내는 냄새에 취해 이미 정신이 어질어질했지만 막내의 눈빛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을 저버릴 수 없어 눈을 딱 같고 한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나는 숨을 참았다. 그리고 서서히 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카레의 냄새와 맛을 마주하는데. 어? 이상한 듯 익숙하다. 혹시 너무 배가 고파서 감각기관이 고장이 났나 싶어 다시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데, 이런, 생각보다 맛있다. 아니, 꽤 맛있다. 그렇게 한 접시를 모두 비웠고,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카레였다.


난 네가 싫어-라는 주문


카레를 먹지 않으니 불편한 일도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카레를 극복할 수 없는 핸디캡으로 여겼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먹지 못하는 음식 알레르기처럼, 카레는 나와 맞지 않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카레 공포의 원인이 타고난 체질이라 생각했는데 가족들 또한 카레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는 유전자가 작용했거나 특정 성분이 나의 감각을 자극하여 고통을 유발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내가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면 할머니는 카레를 끓였다고. 내가 워낙 카레를 싫어하고, 카레 냄새만 맡아도 우웩-거릴 게 분명하니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한 번도 카레를 끓이지 않았던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가정을 꾸려 나간 뒤로 엄마는 카레를 자주 끓였다. 어쩌다 오랜만에 친정집에 들어서다 미세하게 남은 카레 냄새를 맡으면 나는 마약 탐지견처럼 으르렁거리며 카레색 경보를 울렸다. 가족들은 한참 전에 먹은 카레 냄새를 어찌 맡았냐며 이 좋은 카레 맛도 모르는 가엾은 나를 위해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식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카레와 싸우는 동안 가족들은 카레가 무서운 겁쟁이를 위해 수많은 카레를 포기했던 거다. 나의 최애가 누군가의 최악이라면, 나는 과연 그 사람에게 최애를 희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창문을 열고 날려 보내야 했던 건 카레 냄새가 아니라 고집 센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상처로, 때로는 부족한 정보와 뒤틀린 시선으로 시작된 감정은 입을 꾹 다문 조개처럼 어떤 빛도 허용하지 않는다. 싫음의 이유가 충분하다 믿지만 사실은 오해와 편견으로 미움을 받는 게 어디 카레뿐이었을까. 그건 아마 내 취향이 아닐 거야-라며 경험의 파편으로 쌓아 올린 두려움은 거대한 성벽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등진 요새 안에서 내가 만든 건 대부분 미움과 혐오였다. 혐오는 어쩌면 스스로 쌓아 올린 오해의 벽이 만든 오래된 그늘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오랫동안 세상과 싸웠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어눌하면 나도 모르게 경계하고,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검은 고양이라면 그저 무서워했던 것처럼. 비 오는 날은 슬프고 우울하다는 왜곡된 감정에 휩싸이고 생김새와 냄새만으로 형편없을 거라고 오해했던 수많은 미식들에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카레가 수련회 급식과 똑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싫어하는 마음을 움켜쥐고 놓지 않은 것처럼.


두 번째 카레를 만난 후로 나는 호-불호 노선에 많은 변화를 겪으며 나의 ‘싫어하는 마음’에게 묻고 싶었다. 내 인생에 카레는 없다고 단언했던 과거의 내가 민망하지 않도록 억지로 미움을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닌지. 네가 싫다-는 주문이 저는 카레가 싫어요-라고 크게 말하지 못한 어린 나에게 보내는 미안함은 아닌지.

싫어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카레를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한 용기도, 카레에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도 다 괜찮다고. 오랜 미움을 버리고 새로운 감정에 먼저 다가가는 것. 싫어하는 감정을 마무리하는 나에게 카레는 그랬다. 열렬히 좋아하지 않지만 더 이상 싫어하고 싶지 않은, 맵지 않은 두려움이었고 말랑말랑한 미움이었던 한 접시의 용기이자 화해였다.





사진출처: 오뚜기 오키친 [https://ottogi.okitchen.co.krcategorydetail.aspidx=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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