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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Nov 30. 2023

파도가 칠 땐, 질문을 던지지

필사적인 필사일기 - <떨림과 울림> 김상욱 저

우주는 어둠으로 충만하다. 빛은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 지나서야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다. 우주는 38만 살 되던 해, 자신의 모습을 빛에 남겨 놓은 것이다. 9p


어둠뿐인 우주로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건 불과 50여 년 전.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인간은 우주를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과학 선생님은 아폴로 11호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주선은 미래를 위한 도약이자 희망이란다."


십 대 풋내기였던 나는 선생님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뭔가 벅차오르는 기대감을 느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질문의 집약인지 알지 못했다. 인간이 왜 우주선을 만드는지, 왜 수 천 광년이나 떨어진 별과 은하를 찾는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지, 왜 태어났고 살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답을 찾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나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주어진 현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더 강하고 가진 자가 더 많이 누리는 게 당연하며, 그저 어제처럼 오늘을 살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삶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지만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삶은 죽음과 늘 맞닿아 있었다. 왜 죽어야 하느냐 물었다. 죽음은 모든 질문의 시작이었고 가장 아픈 결론이었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였다. 누구나, 결국은 죽어야 했다.


죽음의 거대함, 더 나아가 그것의 거룩함을 인정하기 위해 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태어났는지, 왜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났고, 왜 만물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지, 긴 고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는지. 평생 남을 도우며 살았던 사촌 언니를 세상 너머로 보낸 날,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죽음이 두렵지 않을지 물었다. 재가 되어 다시 하늘로 땅으로 바다로 떠나는 게 죽음이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바랄 뿐이었다. 다시 만나길 바라고 다음 생이 오길 바라지만 재는 공중에 피어 올라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영원한 것을 바라는 욕심에 비해 나는 그저 작고 연약한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잔인한 메아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생명의 유한함은 우주가 준 극한의 공포였고 죽음 너머를 볼 수 없는 남은 자들에게 그리움은 고행이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떠올려 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p37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죽음은 우주가 만든 최고의 운영 체제라고. 이별과 소멸로 받아들이는 대신 새로운 의미가 되는 전환으로서 죽음은 거룩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원한 생명은 없고 또한 영원하지 않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저 무언가 되고 다시 흩어지고 또 무언가 되는 과정이 각각의 소우주에서 일어나는 빅뱅처럼 파괴적일 뿐, 세상에서 소외되고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죽음이 두렵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어둠 투성의 세상이 두렵다. 나는 길을 잃은 별처럼 은하 속 티끌처럼 삶의 의미를 찾아 떠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죽음이 두려운 만큼, 소중한 것을 지키고 삶을 끈질기게 붙잡는 이유다.  


나는 왜 인간이 달에 가야 했는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살아갈 미래 세대를 위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지구 보다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한 탐험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파도를 가장 파도답게 대하기 위해, 두려움 앞에 눈을 감는 대신 가장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용기다. 나는 대담하면서 적나라한 과학의 솔직함이 고맙다. 좌표 없는 초라한 나의 삶도 그럴 만한 삶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물음표 가득한 연약한 여정이 지치지 않도록 세상이 허락한 적절한 온도와 중력, 현기증 조차 느끼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이 얄궂지만, 어떤 달콤한 속삭임보다도 아름답고 아주 미세한 숫자도 포기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이 든든하다. 나는 죽는 날까지 질문을 던지며 파도를 탈 것이다.  


**Adam Levine 이 부른 비긴어게인 OST 중 곡 <Lost stars>에서 인용.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배경이미지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pizar almaulidina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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