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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Jul 03. 2024

20240702 출근일기

우리는 잘 자라고 있어요

조금 이른 출근을 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출근 준비가 바빴다. 현관을 나서는 시간, 목표 시간 내에 겨우 빠져나가는데 번쩍 드는 생각. 감기약을 싱크대 옆에 뒀군.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 약봉투를 낚아챘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엔 노트북을 식탁에 올려 둔 게 생각났다. 하아. 그래도 아파트 정문 앞에서 생각난 게 천만다행이지. 아이는 다시 돌아온 나를 보며, 의아하지만 이내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옷을 챙겼다.

"엄마 또 왔네"

익숙한 듯 놀라지 않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민망하여 웃어 보이곤 바로 내뺐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겨우 겨우 출근 열차를 탔다.

생각해 보니 아이 가방에 얼음물을 챙겨 넣기로 하고 그냥 나왔다. 또 까먹기 전에 알려줘야지.


“물병 말이야. 얼음은 냉동실에서 꺼내서 넣고, 정수기에 냉수를 받아서 채워. 너무 가득 채우진 말고. ….”

혹시 빼먹은 내용이 있는지 살피며 계속 카톡을 보냈다. 내 앞가림하느라 막상 아이 등교 준비를 챙기지 못해 찝찝한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나의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답장을 바라지 않는 듯한 인사를 남겼다.

“엄마, 나 이제 진짜 학교 가요. 빠이. “

짧은 문장이지만 등교뿐 아니라 엄마의 출근까지 매듭을 짓는 인사. 누구보다 바쁘게 백스텝과 러닝을 반복하지만 왠지 돌고 돌아 한결같은 아이의 인사를 받고 나야만 아침이 정리되는 건 왜 그런 걸까. 말랑한 말투여도 꽤나 쫀득하고 달콤해서였을까. 아이의 ‘빠이’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식지 않은 도시락처럼, 열심히 고개를 흔들어도 풀리지 않은 댕기머리처럼 안온한 오늘을 지켜낼 주문이었다. 그렇게 열 시간 동안 꽁꽁 묶은 아이의 매듭 덕분에 나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와르르 쏟지 않고 무사히 일상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게 아닐지.
 
얼마 전 아이는 학교에서 보살피던 식물 화분을 집으로 가져왔다. 아주 작은 토마토 모종을 어렵게 살려냈다며 이름도 있었다. 토망이. 유명한 식물 킬러인 나는 아이에게 토망이를 햇빛 맛집인 친정 베란다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아이는 친정 베란다에서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바람이 잘 들고 햇살도 가득 내리는 자리에 토망이를 두었다. 친정 어른들께 잘 보살펴주기를 당부하며 아이는 화분에 인사를 했다. “토망아, 내일 만나. 빠이.”

집에 가는 동안에도 토망이가 얼마나 빨리 자랄지 기대가 된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폴짝폴짝 뛰며 걷는 아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뱉은 말에 스스로 놀랐다. “토망이가 별 일 없이 잘 자라겠지?”

아이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얼굴로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토망이는 잘 자라고 있어요. 걱정 마요. “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이 이토록 뜨거울 수가. 걱정을 다 씻겨내는 듯한 따뜻한 안부에 머리카락 뭉치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생각덩어리를 저만치 치워 두기로 했다. 아끼는 것들로부터 받은 위로만큼 나도 왠지 안녕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고 싶은 날이어서. 오늘 좋았고 내일 또 만나자고, 빠이.


토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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