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란 Oct 01. 2022

뼈해장국과 감자탕의 관계

제목: 뼈다귀 해장국과 감자탕의 관계에 대해서
(출처 B앱 블라블라 게시판의 어느 글)



어느 커뮤니티의 자게 방이 뼈해장국과 감자탕의 관계에 대한 글로 잠시 떠들썩했다.



시선은 다양했다.

조리법의 차이, 맛의 차이, 누가 더 먼저 알려진 음식인지 후속 요리인지, 둘은 사실 같은 요리 종류이므로 동일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일단 게시글을 쓴 글쓴이는 애초부터 어떤 답을 내리고자 글을 올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둘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다 피식하는 마음에 글을 올린 것이라고.


그렇게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수십 명이 점심 식사로 뼈해장국 또는 감자탕을 선택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탕과 국에 조예가 깊은 나 역시

그 글 하나에 멘탈이 흔들렸다.

점심메뉴를 다시 골라야 하나.

나와 비슷한 어떤 이도 국물을 떠올리며 침이 고이고

또 다른 이는 자식 밥상을 정성껏 차려주시던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참았을지도 모른다.



경험은 위대하고 아는 맛은 더 무섭다.



오랜 시간을 우려낸 국물은

수십년 동안 국물처럼 진하게 우려낸 눈물 같아서

맵고, 개운했다.

해장을 하겠노라 내가 수저로 긁어댄 뚝배기떠올리며 (돼지)뼈 헤는 낮을 보냈다.



나는 먼저 살을 발라낸 뒤 뚝배기에 다시 넣어 즐기는 편이다. 한 번에 살만 얹어 수저 가득히 국밥을 떠서 훌훌 마시겠다는 뜻이다.


밥상 구석에는 스테인리스 통이 놓여 있는데 마치 거대한 발골의 흔적 같다. 돼지뼈나 내 뼈나 참 고생이 많다. 갑자기 오늘 까먹고 챙기지 않은 칼슘과 비타민 영양제가 떠오른다. 적당히 빨간 국물은 사나이도 아닌 나마저도 뜨거운 땀과 눈물을 닦을 만큼 얼큰하다.


이십 년 동안 꾸준히 얼큰하게 탕아로 살아온 나이기에,

국과 탕의 역학관계는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그래서 처음 게시글을 읽었을 때

뼈해장국과 감자탕을 수없이 마주했음에도 단 한 번도 그들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나의 무심함에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닮은 그들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 둘의 관계가 아닌, 음식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 그러니까 내가 음식들을 대하는 태도를 스스로 꼬집어 보기로 한다.



간혹 내가 가진 가장 세심한 자세로 음식의 표정을 보는 날이 있다. 일단 허기를 채우고 나면 비로소 조리의 정성과 든든함이 수저를 거쳐 나에게 닿는다.





음식에는 그들이 머금은 문장, 말투, 풍경이 있다.

때로는 맛이 재밌고 유쾌하며 애처롭기도 하다.


네 글자의 국과 세 글자의 탕, 뭐 그런 관계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그들을 지나친 나를 용서하기 위해,

오늘 난 작은 감자탕(소)과 뼈해장국을 같이 주문해 먹는다.



그들 간의 다름과 닮음을 찾는 날까지 계속 그들을 만날 생각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답을 찾아도 영원히 찾지 못한 것이길 바란다. 뼈해장국을 먹을지 감자탕을 먹을지 고민하는 단계에 어떤 추가 고려사항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디서 혼자 혹은 누구와 먹든, 국과 탕의 어설픈 관계를 모른 척하며 각개 매력을 놓치지 않고 챙겨 먹는 부지런함이다.

때로는 결론이 없는 답으로, 어떤 선택이든 수용하는 너그러움이 더 입맛에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애매하게, 앙큼하게, 미식의 길을 걷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