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이 터져라 부르고 나면 잊지 못할 이야기가 되는 곳
“기분이 좋을 때 무엇을 하고 싶나요? 기분이 울적할 때 무엇을 하고 싶나요?”
다른 질문이지만 내 대답은 늘 같다.
“조용한 곳에서 좀 소란을 피우고 싶어요.”
시끄러운 장소에 가면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라 휴식의 장소는 큰 잡음으로부터 벗어난 곳이길 바랐다. 그런데 소리로부터 자유를 얻은 내가 바라는 건 사실 ‘소란’이라는 점이 매번 모순처럼 들려 이런 질문이 되돌아오곤 했다.
“아니 조용한 곳에서 시끄럽게 굴고 싶다고요?"
그렇다. 소리로부터 얻은 자유는 다른 소란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소란은 이런 것들이었다. 제목과 가사를 품고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그 리듬에 온전히 내 맡긴 목소리, 고음에선 조금 움츠러들고 어떤 가사에선 유독 더 숨어있지 못하고 나오는 떨림, 내 마음대로 넣고 빼는 추임새, 음정과 상관없이 구겨 넣는 묻지마 화음, 가사가 어려워 적당히 붙인 허밍 (보통 ‘라라라’를 사용)까지 고요한 틈바구니는 소리들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늘 조용한 벙커를 원했다.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안전지대를 찾아 헤맸다고 설명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한때는 겁이 많은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 낯선 세상을 동경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감춘 채 ‘멋지고 용감한 사람’인 척하며 지냈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나의 이야기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공책에 숨어있길 바랐고 미운 얼굴로 울 때 혼자 남겨질 구석을 갈망한 다는 것을. 내 것이 된 물건들, 인형들과 잡동사니들이 서랍 한 칸에 잘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우연히 만났다.
나의 소리들을 온전히 담아내는 벙커를. 창문 없는 작은 방, 소파와 테이블, 맞은편에 놓인 화면과 네온 조명., 번쩍이는 마이크와 탬버린. 내가 아는 곳 중 가장 방음이 잘 되면서, 가장 시끄러운 곳. 노래방이었다.
노래방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때였다. 집 근처 상가에 새로 걸린 ‘ㅇㅇ노래방’이라는 간판을 보며 호기심에 안내도를 따라갔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겁이 나 돌아섰다. 그러다 한 친구의 생일날, 친구 어머니 손에 이끌려 그 문 안으로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존재하는 안전하고 고요한 세상에서 나는 마이크를 힘껏 쥐었다. 탬버린을 흔들고, 조명이 만든 하늘을 향해 목이 쉬도록 노래를 띄웠다. 시간은 블랙홀처럼 사라졌고, 그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어떤 주저함도 없이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영화처럼 필름에 담겼다. 어둡고 고요한 암실에서 처음으로 목소리와 장면들이 선명한 이야기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노래방은 방학과 시험이 끝난 날을 기념하는 ‘포효의 공간’이 되었다. 벽에 붙은 인기 곡 목록만 봐도 집에 돌아온 듯 편안했다. 노래방이 있는 집을 자주 상상했다. 숨기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던 시절, 일기장에 차마 담아낼 수 없는 소리들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노래방은 나에게서 흘러나온 문장들을 안아주었다. 때로는 은밀하게 물음표를 붙여주고, 다정한 쉼표를 건넸다. 노래를 마친 내게 언제든 다시 오라는 인사만큼은 느낌표였고.
이토록 노래방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음에도 굳이 남에게 ‘노래방 러버’ 임을 밝히지 않으려 했다. 노래방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뒤틀린 유흥 문화가 노래방의 본질을 흐리고 청소년들의 비행과 크고 작은 범죄에 노출된 공간으로 치부될 때마다 내 마음은 무너졌다. 노래방 키즈로서 내가 품어온, 단단하고 안전한 세계가 흔들릴 때마다 촘촘하게 쌓은 나의 소란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 동료에게 노래방에 대해 설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영어로 무어라 번역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가라오케’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그냥 ‘노래방’이라고 발음했다. ‘가라오케’ 속에 담긴 의미, ‘가짜 오케스트라’라는 말 보다 ‘노래하는 방’이라는 단순한 이름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열어 줄 거라고 믿었다. 가수나 악단이 아닌, 누구든 가수가 되는 곳. 언제든지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 이것만큼 노래방을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것은 노래방을 노래방으로 기억하는 이야기다. 그 길목에서 마주친 기쁨과 슬픔, 설렘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노래방 밖으로 꺼내지 못할, 그 안에서만 영원히 예약될, 그래서 언제든 달려가고 부르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조용하면서 소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독자라면 언제든 예약 버튼을 눌러 주길 바란다.
자, 노래방 입실 시작한다.
그렇게 노래방으로 가서
그녀가 좋아하는 노랠 해
무심한 척 준비 안 한 척 노랠 불렀네 어어
그렇게 내가 노랠 부른 뒤
그녀의 반응을 상상하고
좀 더 잘 불러 볼걸 노랠 흥얼거렸네
이미지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