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보호구역, 노래방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가 생긴 건 초등학교 때였다.
길거리 가판에서 파는 저렴한 워크맨으로 유행가를 듣던 시기이기도 했다. 학교에 있거나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노래를 들었다. 마음에 쏙 드는 노래를 만나면 가사를 받아 적으며 작은 소리로 따라 불렀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그저 따라 부르는 게 좋았다.
남들 앞에서 선뜻 노래를 부르라면 재빨리 숨고 말겠지만 남몰래 나만 들리도록 부르는 노래는 매일 수십 번을 해도 질리지 않았다. 크게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표정과 손짓, 핏줄에 힘을 주어 불렀다. 그렇다 보니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애창곡의 반주만 들려와도 나도 모르게 입술이 실룩거리고 배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가끔은 애창곡을 '애청곡'이라 말한다. 온몸으로 부르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진 노래라서. 그래서 나에게 애창곡-이란 단어는 늘 뜨겁다. 많은 노래들을 제치고 나를 위한 무대에 선택을 받는다는 건 꽤 특별한 일이니까.
나는 애창곡을 자주 선별한다. 계절 별로 목록을 만들기도 하고, 상황이나 나의 목 상태에 따라 분류를 할 때도 있다. 미리 계획하길 선호하는 성격이다 보니 언제든 노래방에 갈 준비를 해 놓는 거다. 애창곡이 여러 곡이면 어딘 가에 노래 제목들을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노래방을 향하는 발걸음은 경쾌하다.
노래를 부를 때 쓰는 에너지보다 선곡에 더 정성과 신중을 기하는 성격이 가진 취약점도 있다. 한 번은, 타인의 애창곡을 기대하며 앉았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리모컨 버튼을 주저 없이 눌렀다. 일단 노래가 시작되면 누구든 부르게 될 거라며 인기가요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 마구잡이로 예약하던 거친 손가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가 화면을 향해 예약 번호들을 와르르 쏠 때, 나는 마치 미리 정돈해 둔 자리에 불청객이 앉은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 노래나 부르는 것까진 그럴 수 있다지만, 아무나 부를 테면 부르라는 식의 ‘묻지마 선곡’으로 마치 ‘폭탄 돌리기’ 놀이를 하듯 모두가 우스꽝스럽게 마이크를 피해 다녔고, 마이크(폭탄)에 당첨된 자에게 내려진 이 많은 곡들을 무슨 수로 해치울지 고민하는 일은 왠지 슬펐다. 서로 너무 다른 노래방 취향 덕분이었는지 그 후로 그의 선곡을 감당하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일행과 노래방에 가게 될 때면 혹시 애창곡이 있는지 넌지시 묻는 습관이 생겼다.
애창곡이 없는 이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노래를 고르기를 미루거나 적극적으로 타인의 노래를 감상한 걸로 기억한다. 노래방 속 군상 중 가장 수동적인 그들에게 노래방은 노래를 부르는 곳이 아니다. 그들에게 노래방은 ‘어쩌다가 그냥 가는 곳’이거나 ‘끌려간 곳’이다. ‘그냥 간 사람’은 노래방이 싫지도, 또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 중립 기어 상태를 유지한 채 노래에 맞춰 호응을 보내거나 박수나 양손 파도타기로 격려를 보내는 따뜻한 역할을 주로 맡는다.
반대로, 노래방에 ‘끌려간 사람’은 시종일관 자신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라 엄포를 늘어놓는다. 마이크가 가까이 올 것 같으면 그들은 분주하다.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음료수를 더 가져온다는 핑계,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시시각각 탈출을 꾀한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마이크 주인들은 그런 그들의 낌새를 놓치지 않고 여러 장르의 노래를 선곡하며 이 노래를 아느냐 묻거나 마이크를 들이밀며 끊임없이 그들을 잃지 않기 위한 시도를 한다. 끌려간 자는 마이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기 위해 버티지만 매번 더 지치는 쪽은 ‘노래를 한 곡도 부르지 않은 자’인 건 노래방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법칙인지도 모르겠다.
간혹 애창곡이라 하면 흔히 가장 자신 있는 노래라고 넘겨짚기도 하는데, 그런 추측을 말리고 싶다.
한 번은 누가 애창곡을 소개하자마자 “오, 그 노래는 자신 있나 보네?”라고 튀어나온 반응에 입을 꾹 닫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냥 부르고 싶은 노래일 뿐이라고 해명을 했지만 그들은 곡에 얽힌 이야기나 취향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를지 지켜볼 궁리 중인 그 성급한, 아니 저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인해, 부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무대에 섰던 사람들은 조용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만다.
참으로 속상한 상황이지만 잘 부를 자신이 없어서 노래 부르기를 단념한 게 아니라 타인의 애창곡을 품격 있게 감상할 관중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해두고 싶다.
적어도 애창곡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벗어나 취향보호구역에서 다뤄야 하는 소중한 감정이고 의지의 표현이므로, 오로지 개인의 의한, 개인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노래 부르기-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창곡 몇 곡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한 번은 파이팅 넘치는 노래를 즐겨 부르는 지인을 보며 마냥 밝고 화사하게 지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 노래는 감정을 칠하는 물감이고 간절한 바람을 담은 편지이며 차마 하지 못한 말과 감정을 쏟아내는 수도꼭지라는 걸 몰랐다. 깔깔대며 웃는 노래,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는 노래, 세상에 마구 울부짖는 노래, 부르고 싶은, 불러야 하는 노래들이 불쑥 다가와 어렵게 수줍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까진.
누군가의 노래가 눈물범벅일 때 나의 눈과 귀는 갈 곳을 잃는다.
눈물이 선율을 타고 흘러내릴 때 차마 그 노래를 끌 수 없다. 대신 불러줄 수도 없다. 타인을 위해 노래를 불러 주는 것보다 온전히 들어주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매번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펼쳤을 이야기를, 울부짖는 마음을 들어주고 싶다. 일기장처럼 감정을 먹고 비로소 이야기가 된 노래를, 나는 두 손을 꼭 쥔 채 듣는다. 부르고 싶은 노래들이 손을 내밀 때마다 나 또한 주저 없이 이야기를 올려놓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그토록 노래를 부르고 싶었나 보다.
현재곡 6943 <밤이 깊었네> - 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노래하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현재곡 1607 <이 밤이 깊어가지만> - 서태지와 아이들
텅 빈 카페에 홀로 기대어
나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네
난 두 눈을 꼭 감고 있지만
너의 모습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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