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영화 속 대사 중 나는 “가자, 진실의 방으로”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진실'이 허락된 공간이 따로 있는 것 같아서, 때때로 거짓된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럴 수 있다'는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든다.
특히 진실의 ‘방’이 주는 아늑하고 외딴 공간에 더 의미를 주고 싶다. 원래 그 방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범인으로부터 자백을 얻기 위해 의도하여 만든 수사 장소이지만, 나는 어릴 적 부모님께 꾸중을 듣고 홀로 남아 앉았던 “생각 의자”와 닮았다고 느꼈다. 왠지 앉으면 그간 저지른 잘못이 마구 떠오르고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진 않지만) 업보를 감당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의자는 주로 방 한 구석에 동상처럼 놓여 평소에는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금지된 영역처럼 투명 바리케이드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부모님께 꾸중을 듣는 일이 줄어든 후에도 가끔 의자가 생각났다. 거짓으로 오염된 감염 도시에서 오직 진실이 살아 숨 쉬는 공간, 평소에는 두꺼운 가면을 쓰다 가도 왠지 솔직해지는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했던 것 같다.
자기주장이 생기고 점점 타인의 말이 거슬리던 때부터 그 의자에 앉는 걸 꺼려했다.
대신 온전히 홀로 남을 수 있는 나만의 방을 원했다. 동생과 공부방을 함께 쓰던 대부분의 시절동안 나만의 방은 주로 욕실이었다. 샤워하라는 잔소리는 듣기 싫었지만 혼자 흥얼거리는 게 좋아서 자주 씻었다. 적어도 씻는 동안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그 공간에 있다고 하면 쉽게 문을 열고자 시도하거나 두드리지 않았으니까. 촤아-하고 얼굴에 쏟아지는 물줄기는 오선지처럼 어떤 가락을 떠올리게 했고 그럴 때마다 나만 들었으면 하는 노래들을 흥얼거렸다. (물론 너무 신이 나서 목이 트이는 날이면 거실에 있던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을 텐데 희한하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욕실 밖 아지트를 찾다가 본격적으로 혼자 노래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진작부터 그러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여유도 필요했고 노래방을 청소년이 혼자 가기 어려운 사회적 시선 탓도 있었다. 대학 시절 눈여겨봐 둔 노래방의 오픈 시간을 확인하고 수업이 빈 시간에 혼자 갔더니, 이게 웬일이야, 그야말로 내 세상이자 전세받은 천국이었다. 일단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는 데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편하게 머물고 싶을 때까지 실컷 노래를 부르라며 보너스 시간을 3시간이나 미리 넣어 주셨다. (그래도 부족하면 언제든 말하라는 그분은 진정 최고의 산타, 성함을 몰라 그저 Saint 노래방 사장님이라 부를 수 없는 게 참 아쉽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완전히 망가질 수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불가능한 고음을 내지르고 처음 보는 언어로 뻔뻔하게 가사를 음미했다. 제 멋대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하고, 음정을 한껏 올려 돌고래 소리로 고주파 테러를 감행했으며,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세상 모든 불만을 짓누를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랩을 시전 했다.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여서 박자가 틀려도 음이탈이 나도 걱정이 없었다.
그러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개성 없는 목소리와 웅얼거리는 화법, 워낙 말주변이 없는 데다 순발력마저 부족하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 대본을 그대로 읽는 것마저 말소리가 입술에 걸려 웅얼거렸다. 같이 스터디를 하는 친구들에게 용기를 내어 모의 청중이 되어 달라 부탁도 했지만 개미 지나가는 소리보다 작은 목소리에 다들 집중하지 못하고 귀만 쫑긋거릴 뿐이었다. 소득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방 앞이었다. 갑자기 에너지가 솟는 걸 느꼈다. 모의 발표를 할 때와 다르게 의기양양하게 서서 비트가 강렬한 노래를 몇 곡 뽑아냈더니 속이 한결 후련했다. 다음 노래를 예약하려다 잠시 멈춰 마이크를 들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발표에 앞서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듯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듣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장난을 치고 싶어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하이 톤으로 말하다가 또 고상한 저음으로 목소리를 깔았다가, 개그 욕심을 부려 익살스럽게 억양을 넣으며, 수요 없는 공급처럼 빈 객석을 향해 무턱대고 내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꽤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뭐지. 엉터리 내용으로 발표를 연기한 건데 점점 나의 목소리가 편안하게 들렸다. 욕실에서, 노래방에서 수없이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이토록 솔직하고 거침없는 내 이야기를 나에게만 들려준 적이 있었던가. 긴장이 풀리고 떨림이 빠지니 그렇게 못 들어줄 목소리는 아니었네-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진짜 기다렸던 관객을 비로소 만났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때때로 나만의 방을 찾아다녔지만 그 안에서도 계속 헤맸다. 사회적 자아로 지내는 게 버거운 날, 화장을 지우고 늘어진 티셔츠만 걸친 채 헝겊 조각처럼 너덜너덜하게 존재하고 싶을 때마다 홀로 머물렀지만 결코 자물쇠를 걸어 잠그지 않았고 마음 구석에 동굴을 만들 때에도 늘 햇빛이 그리웠다. 혼자가 되어 자유롭게 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고립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줄 관객을 기다리는 마음인 듯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찾던 자기만의 방에는 마이크와 방음시설만 있으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때때로 내 안의 소리가 미울 때도 있지만 귀를 닫을 수 없는 이유는 적어도 스스로 힘겹게 뱉은 작은 소리를 위한 청중이 되어 주라는, 어떤 목소리도 소외되지 않길 바라는 인간의 의지일 수도 있을 테니.
아직도 목소리를 내는 용기보다 외면하지 않는 배려를 스스로에게 바라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한 번쯤 자기 자신을 힘껏 안아줄 거란 믿음을 갖는 것, 어떤 목소리여도 끝까지 듣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만으로 이미 나는 나에게 아낌없이 귀 기울여 주는 ‘귀’인이라고 믿는다.
불쑥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힐 때, 귀를 크게 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노래방 문을 활짝 연다. 자기만의 방에서, 진실의 방에서, 나는 내 곁을 지킬 생각이다. 아무 때고 소리를 내고 귀를 기울이는 순간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곡 22980 <들려주고 싶었던>- 이승윤
엉켜 있는 가시 넝쿨들이 많긴 해.
뒤얽혀 있는 가사들을 꺼내야 해
그리고 불러야 해 네가 들을 수 있도록
현재곡 27372 <도망가자> - 선우정아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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