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와 마이크 사이

누구나 마이크 하나쯤은 갖고 태어난다지

by 헤이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요?”


아기는 첫 생일에 일생일대의 순간을 맞이한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 ‘돌잡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잡이는 아기가 집는 물건으로 장래를 점쳐보는 풍속이다. 돌잔치 상에 사물들을 펼쳐놓고, 아이가 무엇을 고르는지를 지켜본다.


아기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반영되다 보니, 돌잡이 상 위에 놓인 물건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날 상 위에는 현금, 축구공, 청진기, 판사봉, 실, 그리고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뉴스마다 해외 축구 선수의 연봉이 오르내리고, 유튜버가 대세라며 입을 모으는 시대. 부모의 바람은 그렇게 그 위에 스며들었다.


아기가 마이크를 집어 든 순간, 아빠는 유명 연예인이 탄생했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기는 마이크를 연신 입에 갖다 대며 방긋방긋 웃었다. 어쩌면 수저와 마이크를 구분하지 못한 아기는, 자리를 채운 모두의 축복 속에서 무사히 인생의 첫 선택을 마쳤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무엇을 집었을까. 냉큼 집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내가 뭘 집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행운의 물건들 대신, 차려놓은 음식이 탐나 숟가락을 집었을 것 같다고 했다. 기억을 못 한 게 민망했는지 사진을 찾아보겠다고 하면서도, 어김없이 내 끼니부터 챙겼다. 왠지 그날의 엄마도 돌잡이 상보다 잔치 내내 나를 잘 먹일 궁리부터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엄마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다들 자기가 먹고살 수저는 챙겨 갖고 태어난다잖아.”


실제로 나는 수저를 택한 덕분에,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무탈하게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의 환호성과는 달리, 세상은 돌잡이 때 뭘 집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디에 사는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를 묻는다.





어린 시절, 사람들은 나를 주로 ‘이총무네 손녀’라고 불렀다. 경로당 총무를 맡고 계신 할아버지를 먼저 떠올렸고,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놀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꼭 아는 체를 했다.

“너는 오거리 지나서 나오는 짜장면 집 딸이지?”, “너는 장충동으로 일 다니는 할머니 손녀고.”


그래서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 집이 어떤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적당히 기억했다. 이름도 모른 채 그네를 타며 친해졌지만, 학교에 들어가고 도시락을 같이 먹다 보니 또래들 사이에도 묘한 위계가 생겼다. 점심마다 갈비를 싸 오는 친구가 갈빗집 사장님의 아들이란 걸 알게 된 순간, 쇠수저가 아니라 갈비 집게를 들고 태어난 것만 같은 그 친구가, 왠지 삶에 한 발 앞서 선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아빠의 직업은 샐러리맨, 작은 사업장의 직원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자녀로 산다는 건, 아무 때고 탕수육, 김밥, 붕어빵을 먹는 달콤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집이든 저마다 가진 복이 있다는데, 갈비를 매일 먹는 그 애는 어떤 운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친구의 수저를 확인하는 것도 그런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

그 친구 도시락에선 누구나 부유한 향기를 느꼈다. 자기 도시락에 실망한 아이들은 반찬 하이에나처럼, 맛집을 고르듯 부잣집 도시락을 찾아다녔다. 값비싼 반찬들은 학급 내 관심을 독차지했고, 인기를 타고 점심시간을 평정하더니, 급기야 전혀 상관없는 대화에서도 “그 애는 집이 잘 살아서 그래”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나는 한 번도 갈비를 얻어먹지 않았다. 풍족한 친구의 주머니 사정이 부러워 질투가 나서였다. 한 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수저를 내밀 용기를 내기도 전에 기회는 사라졌다. 그 애는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네 갈빗집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소식들로 인해 나는 수저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정을 모른 척하는 법도 자연스레 터득했다.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고기반찬보다 하이테크 펜을 언제든 가질 수 있는 문방구나, 신간 만화와 '다이하드' 시리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비디오 대여점이 더 부러웠다. 그런 가게를 하는 부모 밑에서 풍족한 재화를 누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어른이 된 내가 가게 사장이 되어 미소 짓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평범한 부모님의 직업이 조금 더 아쉬웠다. 내 방을 스쳐간 수많은 펜과 비디오테이프, 만화책이 모두 부모님의 월급 덕분이라는 걸, 알고도 몰랐다.



특히 친구 '오월'은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수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은 수저 보다 더 멋진, 마이크를 들고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노래방을 운영하셨다. 그래서 그는 주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를 부를 줄 알았지만 그는 오히려 노래방을 즐기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오월과 나 사이에는 각자의 노래방이 있었다. 내게 노래방은 잠시 일상을 피해 숨는 도피처였지만, 오월에겐 가족들이 추억을 묻어 만든 삶의 현장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그는 종종 부모님 대신 노래방을 지켰다. 가게를 깨끗이 정리하고 손님만 잘 받으면 될 줄 알았던 가게 일은 만만치 않았다. 취객을 상대하거나 진상 손님이 들이닥친 날엔 무작정 사과하거나,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나와 친구들은 일손이 되어 돕겠다는 핑계로 그 가게를 찾았고, 공짜로 노래방을 마음껏 누렸다. 손님이 없는 틈에 오월도 합류했다. 다 같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던 그때, 마이크에서 이상하게 빛이 났다. 그건 뭘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한 빛 같았다. 뭐든 해내야 할 것 같은 마음과 어떤 형태로든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내려놓고, 우리는 마이크를 들었다.



누군가의 노래에 박수로 화답하고, 함께 웃으며 따라 부르던 밤. 마이크는 우리를 나누는 게 아니라 묶어주었다. 누구의 수저가 반짝였는지, 각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아도 잠시 잊어버린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한 데서 노래를 꺼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상징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은 채 털어낸 노래방 마이크 하나에 목소리를 맡겼다. 마치 내가 세상에 올 때, 먹고살 수저뿐 아니라 위계로부터 한 걸음 비켜날 자유, 아무렇게나 부를 노래, 아무 때고 말을 걸 마이크도 함께 챙겨 온 것처럼.



문득 마이크를 집었던 아기의 안부가 궁금하다. 행여나 정말 연예인이 될 재목인지 묻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고. 앙증맞은 손으로 마이크를 꽉 쥐고 기쁨을 누렸을 그 순간과 그 세상이, 아기의 기억 어딘가 단단하고 선명히 자리 잡길 바랄 뿐이다.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다시 말하지만, 다들 자기 몫을 품에 안고 세상에 온다고 하니까.


돌잡이 사진은, 그냥 찾지 않기로 했다.





현재곡 59324 <너의 의미> - 아이유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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