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의 맛

멋이 없어도 포기 못해

by 헤이란

지퍼백으로 열고 닫는 대용량 과자 코너를 지날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넉넉한 양. 낱개로 여러 개 사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이다. 커다란 과자봉지는 마치 품을 가득 채운 푹신한 곰인형 같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풀어진다. 과자가 금세 사라질 걱정 없이 뽀얀 과자가루를 입에 묻히며 하루 종일 먹고 싶어진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과자 파티를 벌이는 동안 어릴 적 할머니가 한 냄비 가득 쪄서 내준 삶은 감자 꾸러미처럼 너그럽고 오래가는 위로에 마음이 확 풀린다.



양이 풍족한 과자를 좋아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먹을 것으로 동생과 자주 다툰 이유와 같다. 과자를 먹을 기회가 흔하지 않았고, 가끔 찾아오는 과자는 나 혼자 온전히 즐기기엔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쩌다 용돈을 받으면 과자를 하나 고를 수 있었는데 매번 맛과 양을 고려하여 선택했던 과자는 바로 새우깡이다. 노래방 새우깡은 대용량 과자계의 개척자이자, '저걸 언제 다 먹지?'라는 행복한 고민을 처음 안겨준 나의 뮤즈였다. 여러 경제적 상황과 고소함에 특화된 개인적인 미각 이슈로 새우깡은 그렇게 나의 첫 취향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새우깡’이 시작이었다. 취향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스스로 드러낼 때 더욱 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새우깡이 좋다고 말하면 뒤이어 왜 좋아하는지 말하게 된다. 좋아하는 이유를 나열할 때 감정은 극대화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더 공고히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수치화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서툴렀던 나는, 가장 좋아하는 과자가 최고의 과자가 아닐까 봐 불안했다. 취향이 아직 단단하게 무르지 않은 틈으로 강력한 과자들의 유혹이 있었다. 세상에 맛있는 과자가 얼마나 많은 지 아냐며 신상 과자들을 내민 이들은 말했다. 새우깡은 좀 올드하잖아. 어떤 과자는 봉지마다 따조나 스티커를 넣어 수집의 기쁨을 주었고 어떤 과자는 고소한 맛, 매콤한 맛, 치즈맛 등등 선택의 자유를 준다며 과자계의 신흥강자들을 권했다.



트렌디한 과자에 대한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낯선 풍미를 곁들인 과자들은 마트에서 유난히 걸음이 느린 사람들, 소위 호모 스낵쿠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과자라면 내공을 내세울 법한 나 또한 과자들의 유혹을 마다할 리 없었다. 허니버터칩 품절 대란에 뛰어들고, 꼬북칩 초코맛을 찾아 먼 동네 편의점을 순례하기도 했다. 맛은 점점 '멋'이라는 이름으로 위계를 내세웠고 간식은 실험처럼 느껴졌다.



감각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점차 다른 맛을 알아갔다. 술과 안주를 즐기며 더 진하고 자극적인 ‘어른의 맛’을 동경했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치킨에 맥주를 마시더니 한정판 수제 양조주가 궁금했다. 재즈바에서 칵테일을 홀짝이는 상상을 했고, 가끔 비싼 술로 분위기를 내야 한다는 착각도 했다. 코냑도 마셔봤다. 한 모금 마시면 인생의 시름이 사라진다길래. 그런데 나는 시름이 사라지긴커녕, 밤새 달빛처럼 반짝이는 잠을 설쳤다. 어른 흉내는 늘 어딘가 어색했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것처럼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 그런 거라 생각했다. 이해하기 위해 더 독하고 비싼 맛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 졸업한 지 몇 해 되지도 않았는데도,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며 저마다 본인 몫을 해내는 게 버거워 이미 술을 얼큰히 마신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른이 되려고 애쓰지 말걸! 답답한 기분은 노래로 토해내고 헛헛한 기분은 술로 채우자며 맥주를 시켰다. 노래방에서 마시는 맥주는 마트에서 파는 가격보다 훨씬 비쌌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음에도 왠지 맥주를 주문해야만 있어 보인다고 믿었다. 눈치 보지 않고 과소비와 사치를 부리는 게 어른만의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때 사장님이 맥주를 담은 쟁반과 함께 탁자 위에 놓은 기본 안주는, 바로 새우깡이었다. 어라,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우연히 오랜 단짝을 만난 기분이었다. 잊고 있던 이름, ‘노래방 새우깡’을 본거지에서 다시 만났다. 몰디브에서 마시는 모히토처럼, 융프라우에서 먹는 컵라면처럼. 이토록 제자리에 있는 조합이 또 있을까. 찾고 찾던 맛과 멋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예약된 곡들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선곡은 뒷전이었다. 분위기를 바꾸자며 트로트나 힙합 노래를 권해왔다. 관객몰이가 목적인 힙합을 선곡해야 마땅하나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새우깡을 입에 털어 넣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뒤 당당히 앞으로 나갔다. 이끌리듯 고른 노래는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만화 주제가였다. "이 노래는 뭐야?" 놀란 일행들은 처음엔 애들 노래를 부르냐며 웃더니 후렴구부터는 나보다 더 크게 따라 불렀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른의 맛은 비싼 술이 아니라, 나 다운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철부지 같은 모습일 수도 있다는 걸.



결국 나를 제일 잘 위로해 주는 건, 힘 빠진 어깨로 노래방에 앉아 친구들과 나눠 먹는 새우깡이었다. 노래방 카운터에 쌓아 놓은 새우깡 봉지, 잔잔한 조명, 친구들과의 웃음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한 곡. 그 틈 사이에서 나는 진짜 어른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아니, 그래서 더 괜찮았다.



유행하는 건 다 맛보고 싶고, 화려한 걸 뽐내고 싶은, '부러운 어른'이고 싶었다. 그러나 새로운 맛에 지칠 무렵, 익숙한 짠맛이 다시 그리워졌다. 세태를 쫓아 찾은 맛은 간식이 아니라 실험 같았고, 결국 매번 긴 고민 끝에 새우깡을 카트에 넣었다. 커다란 봉지 속에 쏙 들어가 수다를 떠는 뻔한 맛.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희망곡처럼 예상가능한 맛. 너무 흔해도, 여전히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는 맛. 이런 걸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의 친애하는 간식 테마는 언제나 클래식일 테다.



변하지 않는 맛이 있다는 사실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준다. 노래방 새우깡 덕분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퍼백을 열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한결같은 위로. 인심 좋은 대용량 휴머니스트. 꾸준한 맛으로 나를 지켜가는 마음. 그 맛을 생각하면, 다시 한번 나도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진다.







현재곡 97113 <당신과는 천천히> - 장범준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당신과 함께 순간만은 천천히


이미지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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