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은하수다방에서
나는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가급적 챙겨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과몰입 때문이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지만, 머릿속은 딴 데 가 있다. 할 일을 하다가도 하루 종일 드라마의 내용을 떠올리거나 다음 전개를 예측하느라 진이 빠지기 일쑤다. 특히 회차가 중반을 넘어갈수록 인물 간의 관계가 깊어지는데, 나는 마치 드라마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처럼 그들의 감정에 이입해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드라마의 서사 중 내가 특히 견디지 못하는 구간은, 사랑이 정체되는 시점이다. 분명 커플이 되어야 할 두 사람 사이에 자꾸만 걸림돌이 생기고, (적어도 내게는) 빤히 보이는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괜한 오해로 삐끗하면서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들 말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애꿎은 리모컨을 툭툭 두드리거나 화면에 대고 쓴소리를 할 때마다, 동거인들의 불만은 커졌다.
다행히 드라마 작가들은 줄다리기에 능했고, 나의 분노가 극에 달할 즈음 러브라인 실현을 암시하는 떡밥을 와르르 뿌렸다. 이를테면 두 주인공이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라든가, 여주의 모습을 보고 남주의 눈빛이 떨리며 무언가를 결심하는 장면이 그랬다. 나는 감독보다 더 냉정한 눈으로 남주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살폈고,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장면이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조용히 화면을 향해 말했다. 고백해, 오늘 꼭 고백해.
고백.
그렇다. 드라마 전개의 전환점이자 감정선의 분수령이다. 단순히 마음을 전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마음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끌고 갈 것인가를 결정짓는 열쇠이기도 하다. 고백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게 미완이다. 아직 밝히지 않은 감정,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 고백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의 날씨와 장르와 에너지가 바뀐다. 나의 하루마저 그 흐름을 따라 바뀐다. 천둥처럼 마음을 흔들어 대는 고백으로 답답했던 감정은 폭우처럼 쏟아져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갔다.
한때 나는 고백에 대해 제법 아는 척을 하곤 했다.
“사랑은 타이밍이야.” “고백이 연애의 꽃이지.” 라며 지금 돌아보면 민망할 만큼 선무당 같은 조언들을 늘어놨다. 친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백의 장소와 노래까지 추천하며 나름의 연출도 도왔다. 하지만 그 시절의 고백들은 대체로 연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고백이란 건,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일까. 고백은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면서도 가장 가슴 졸이는 장면이 되었다. 기다리고, 응원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안해지는 그런 순간.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하라는 노래 가사처럼, 고백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일타 가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답이 있다면 그 마음을 덜 떨리는 목소리로 부를 수 있을 텐데. 한동안은 고백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이야기로 남았다.
그러다 어느 모임에서 같이 노래방을 간 적이 있다. 술이 몇 잔 돌고, 사람들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오르자 자연스럽게 2차로 향한 자리였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방이 점점 시끄러워졌다. 누군가는 탬버린을 흔들고 누군가는 소파 너머로 마이크를 건넸다. 음료수 캔은 반쯤 비었고, 화면은 끊임없이 반짝였다. 리모컨은 손에서 손으로 넘겨졌고, 노래는 점점 빠르고 요란해졌다. 어느새 노래방 특유의 무대감은 사라지고, 잔칫날 같은 소란함만 남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승환의 <세 가지 소원>을 예약했다. 처음엔 또 누가 용기 있게 분위기를 바꾸는 발라드를 골랐나 싶었다. 그런데 마이크를 든 그는 갑자기 한 사람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놀라 말하던 소리를 멈췄고, 탬버린 흔드는 손도 가만히 멈췄다. 그가 첫 소절을 부르자,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한순간에.
“나 어쩌면 천사와 손 잡았나 봐요.”
순간, 방 안은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말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다가, 누군가 조용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진심으로. 나는 조용히 탄식했다. 아, 고백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버터 냄새가 나는 듯한 느끼함을 애써 숨기면서도, 그 순간의 생생함과 부러움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고백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말랑말랑한 감정을 속삭이는 곡, 처절한 사랑의 역사를 읊는 대서사시, 나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가스라이팅 냄새가 자욱한 속사포 고백까지. 고백의 방법은 제각각이었고 목소리는 늘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간혹 선곡 하나로 연애가 시작되기도, 물거품처럼 끝나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임재범의 <고해>를 불러야 반응이 좋다는 말에 나는 의아했다.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하며 고통스럽게 고음을 토해내는 목소리와 목에 선 핏대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자칫하면 1절만 겨우 채우고 간주 점프, 2절 앞에서 다음 곡으로 패스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고백에 성공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잘 부르지 못해도 돼. 다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게 중요해.”
난 그 말에 1000% 공감한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플라워의 endless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널 사랑한다, 죽는 날까지 기다리겠다는 가사에 너무 감동한 거다.) 정통 고백만큼 무서운 게 없다. 여러 술자리에서 이런 고백이 내 취향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음에도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건 안타깝지만, 괜찮다. 내가 손수 나를 위해 열심히 불렀으니, 만족한다.
혹시 지금 입 안을 맴도는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백이든, 고백 같은 선물이든,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 노래방으로 가기를. 사랑은 가끔 그렇게 시작되기도 하니까.
현재곡 5924 <세 가지 소원>- 이승환
나 어쩌면 천사와 손 잡았나봐요
그대의 마음이 날마나 날 유리처럼 빛나게 투명하게
이미지 출처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