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사이가 되고 싶어

by 헤이란

지인이 소개팅하고 온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는 분의 아는 분을 통해서 소개를 받았고 연락처를 교환하여 주말에 만났다고 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무난한 남성분이라고. 그래서 만나보니 어땠냐고 물으니 그냥 겉도는 이야기 좀 하다가 왔다며 이렇게 말한다. 소개팅이 다 그렇죠 뭐.


딱 보아도 소개팅은 별 다른 진전 없이 끝난 것 같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또 물었다.

원래 그런 자리 나가면 깊은 대화는 좀 어려운가요?

글쎄요. 깊은 대화를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요. 한 번 보고 다시 안 볼 사이가 대부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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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연스럽지 않은 만남에서 대화의 불꽃을 만드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그 말에 한 번 더 동감한다.



소개팅은 말 그대로 서로를 소개하고 알아가는 자리다.

그렇다 보니 일단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질문에 답한다.

다소 단순한 행위지만 그 자리가 마지막 자리가 될지, 아니면 다음 만남의 시작이 될지를 결정 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듣자 하니, 주로 묻고 답하는 내용은 가족이나 다니는 직장, 현재 경제적 능력과 향후 계획, 평소 취미나 주말에 한 일 등등 다양했다.

그러니까 굳이 요약하자면, 이력서 혹은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대외적 개인사를 조금 풀어서 보여주는 자리라고 정리하면 되겠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질문은 궁금함에서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저 사람에 대해 궁금해보려는 노력도 조금 필요하다.

궁금하다는 건 관심의 감정이고, 관계를 시작하는 발화점이다.

관계가 시작하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딱 필요한 것만 물어본다. 안 물어보는 건 안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궁금하지 않기에 질문의 깊이도, 대답의 깊이도 없다.



소개팅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딱 필요한 질문이 아니면 서로 묻지 않는 게 국룰이 되어 버린 사회생활.

어디까지 궁금하면 괜찮고, 어디까지 대답하면 서로 불편하지 않게 매너 있는 것일까.



그렇게 대부분의 우리는

서로 묻지 않고 서로가 궁금하지 않다.

그냥 그런 사이라서 불편함이 없고, 불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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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은 서로 끌어당긴다.


같은 힘으로 당기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는 유지된다.

우주 만물은 그렇게 끌어당김을 해나가고, 또 계속 끌어당김을 지속하기 위해 생존을 이어 나간다. 우주의 에너지는 도대체 왜 끌어당김일까.



별이 만들어지고 별이 생을 다하는 시공간 또한 강렬히 잡아당기는 그 어떤 점에서 시작한다. 빛조차 끌어당겨서 어둡고 캄캄한 그것은 블랙홀이라는 이름의 까만 점이다.



어떤 존재들은 이 지점에서

서로에게 미처 다가가지 못한 채,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희석되고 결국은 '끝'이라는 점이 된다.

세상의 "엔딩"이 강렬한 끌어당김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불필요한 관계들어쩌면 불꽃을 만드는 "방아쇠 당기기"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단코 타인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마도, 궁금한 만큼 나의 마음을 내어 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궁금하다면 그것은 작은 끌어당김의 시작이다. 궁금함은 '아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궁금함은

내 마음이 용기를 내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 사람을 아끼고 계속 관심을 가질 애정의 표현이고, 때로는 그 애정을 거절당할 수 있음을 아는 마음이다.

소중한 것들은 늘 궁금하다. 잘 있는지 궁금하고, 영원히 잘 있어줄지 궁금하다.



밥은 먹고 일하니? 문득 궁금해서 연락했다.



그저 일에만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상황 따위 관심 없고 눈 앞에 놓인 과업, 목표에만 충실하던 무척 바쁜 날이었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또 누가 급한 일을 시키려고 문자를 보낸거야. 빨리 확인하고 처리하려고 휴대폰을 보니, 어? 딱히 연락할 일이 없었던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갑자기 나의 안부가 궁금했다고, 그래서 일단 연락을 했다고.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뻔한 질문들이다. 요즘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있었다면 혹시 많이 힘들었던 건 아닌지.

밥도 거르며 달력을 넘기는 것도 잊을만큼 정신없던 나는 일을 멈추고 앉았다. 문득 나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토록 남들에게 무심한데.

나를 챙기는 세심한 안부는 맑고 보드라웠다.

비로소 내 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관계의 시작은 질문이었다. 잘 지내? 네가 궁금해. 너의 이야기를 들려줄래?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시선을 만들고,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어떤 순간들을 함께하며, 쌓이고 쌓인 추억의 공유자가 된다.



모르는 존재와 가까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가까워진다는 건, 저마다 다르게 생겼음을 깨닫는 것이다. 하물며, 거울 속에 비친 나 또한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나와 다르기에. 사실 우리는 매 순간 놀라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고 관계가 정의된다. 익숙해진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궁금해하고 아낀다.

너에게 넉넉히 시간을 쓰고 너의 말에 오로지 귀를 기울이고 생각한다. 더 살펴보고 알아가고 때로는 네가 되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그 사람이 한없이 깊이 궁금한 마음이다.



네게 먼저 안부를 묻던 그들이 고맙다.

나도 그들이 몹시도 궁금하기에,

그들이 몹시도 소중하기에,

용기를 내어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나처럼, 별들도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나 봐요.
- Capenters 의 "Close To You"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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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출처: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c%97%ac%ec%84%b1-%ec%8a%a4%eb%a7%88%ed%8a%b8-%ed%8f%b0-%ec%9d%98%ec%82%ac-%ec%86%8c%ed%86%b5-5887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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