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과 저녁 사이(feat. 타파스)

by 헤이란

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여행을 한다.

한 번 두 번 여행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나름 여행의 이유라는 것이 생긴다. 예를 들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 혹은 예기치 않은 인연과 해프닝을 즐기는 것. 아니면 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먹고 헤벌쭉 신나는 것.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답답할 틈 없이 열렬히 사랑했던 여행지는 바르셀로나였다. 이곳을 사랑한 이유는 많다. 투쟁과 정열의 역사, 미친 날씨, 아름답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그저 잘생겼고 잘생긴 도시의 멋.


그래도 굳이 이유를 하나 꼽는다면, 특히 끼니에 진심인 나에게, 점심과 저녁 사이에 먹는 타파스는 신선한 유혹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뜻하는 말들이 모든 언어에 있듯이 삼시 세 끼는 문화적, 과학적 이유를 충분히 가진 단어일 것이다. 특히나 밥때를 지키지 않으면 큰일 나는 가풍 속에서 자랐기에, 내 입장에서는 끼니와 끼니 사이에 또 다른 먹을 틈이 찾는 것은 진취적이고 귀여운 비행(非行)이었다.


오후 네시와 여섯 시 사이.


여행자는 도시 곳곳을 탐닉하느라 평소보다 더 많이 걷기 마련이다. 저녁 식사를 앞둔 늦은 오후는 은근히 배가 고프지만 무언가 제대로 챙겨 먹자니 애매하다.

고뇌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 비집고 들어온 먹부림은 가장 강력하다. 저녁 장사를 하는 식당은 아직 개시 조차 하지 않은 곳도 있다. 타파스를 파는 식당을 찾았다. 애매한 마음으로 찾아간 그곳은 잠시 구멍 난 속을 달래기 안성맞춤이었다.


저녁 식사 전에 한 잔 마시며 곁들임 음식으로 즐겼다는 타파스는 작은 접시 크기의 뚜껑을 뜻하는 tapa 에서 유래했다. 술잔에 접시를 뚜껑 덮듯이 올려놓고 안주를 먹었던 유쾌한 점심과 저녁 사이의 시간은 기대이상이다.



타파스는 결코 마른안주나 단순한 핑거푸드와는 다르다.


한 접시에 담기에 아까운 화려한 메뉴들.

간결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풍미.

한 두 가지의 타파스만 즐겨도

테이블은 풍성하고

안은 즐거움이 가득하며

마음은 풍요롭다.






사실 여행지가 아닌 일상에서도 다르지 않다.

특히 일터는 그랬다.

4시쯤 풍기는 간식 냄새는 사무실에 울리는 경종과 같다. 식사와 식사 사이. 간식은 배고픔만큼 서러운 외로움을 달랜다.


뭐라도 같이 먹을까요?

나는 아주 바쁘지 않은 날, 가끔 사다리 타기를 제안하며 먹부림을 선동하곤 한다. 좋은 동료들과 일하고 있다면 부담 없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절호의 기회다.

간식 쏘는 사람에겐 메뉴선택권이 주어진다. 명예롭지만 사뭇 어깨가 무겁다. 범세대적 간식을 고르는 센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뭐가 좋을까. 끙끙대며 음식대탐험에 나선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아시안 푸드까지 전 세계를 돌고 돈다. 결국 분식을 주문하며 혼자 끄덕인다.

대한민국의 분식은 어딜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타파스구나.


0b18d798a953e5c636f51f8f86def1ce.jpg 출처: 아딸, https://addalmall.com/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접시


"배고팠는데 정말 맛있어요. 감사해요."

"오늘 힘들었는데 스트레스가 풀리네요."



먹부림은 칼부림보다 더 저돌적이며

어떤 몸부림 보다 '열심'이었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우리들의 시간이 생긴다.

차려놓은 음식들은 우리들의 상차림이고

같이 먹다 보니 살뜰한 사이가 된다.

점심과 저녁 사이를 채우며

헛헛함을 보듬는 사이가 된다.


고마운 마음에 비하면 값싼 간식이지만

부담 없이 한 숟가락 하세요, 권할 수 있어 좋다.

누구에게든 같이 먹자고 다가갈 수 있는 소소 함이라 다행이다.





타파스는 한 접시의 그리움이다.


시작이 배고픔이었든 무료함이었든,

때와 때 사이를 채우는 음식은 그 역할에 충실하다.


한 사람의 고독한 시간이고,

일행들의 가벼운 담소 시간이며,

여행자에겐 낯선 곳에서의 휴식일테니.


손바닥만 한 접시에 담아낸 마디의 시간은

늘어지지 않고 간결하게 추억이 된다.

무겁지 않아서 마음에 넣다 보니 결국 그리움이 된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한 접시 내밀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배고픔은 사실 '네가 보고픔'이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날

입 짧은 벗에게 한 잔 사고 싶은 날엔

조금 허전한 시간을 물어

타파스 바에 함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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