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린 건 맞으나, 우습게도 그 글을 정말 누가 볼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게 어색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걸 어쩌겠나.
아. 그거. 아무 일 없어. 그냥 뭐라도 쓰고 싶어서 아무거나 적은 거야. 걱정 마. 하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인지 아무 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내뱉는다.
글 재주도 없지만 말재주는 더 심각하군.
그것은, SNS에 올라온 글을 읽은 그들의 반응을 듣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아마도, 글쓰기가 여전히 내겐 너무 어렵고 버거운 탓일 것이다.
처음 칼을 든 초짜 주부처럼, 글 덩어리들을 듬성듬성 제멋대로 썰어 놓는다.
글 뚝딱뚝딱.
글을 발행하시겠습니까. - 네.
숨어 쓰던 일기를 조금 따뜻한 곳에 적어 보려는 나에게
펜과 노트는 세상에서 가장 사려 깊은 사물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밤에 자판을 두드리는 내 뒤통수를 보면서도 '아이고 아서라 관둬라' 하고 말리지 않은 다른 사물들을 원망한다.
그냥 얼굴 나온 사진이나 몇 개 잘 골라서 올릴걸. 내가 미쳤지.
굳게 마음을 먹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나 결코 그것들을 삭제하지 못한다. 흑역사도 나의 역사이고 부끄러운 글도 내 업보인 것을.
부끄러움은 무모함을 만나 뻔뻔함이 된다.
한 번은 어렵지만 그다음은 훨씬 쉬워지듯 나는 점점 더 뻔뻔해졌고
그러다가 얼떨결에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쓰기와 닮은 단어들이 있다.
해방. 독립. 자유. 꿈......
열렬히 짝사랑했기에 그것을 닮은 이름을 찾아다녔고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아름다운 단어들을 빌려오곤 했었다.
그러나, 그날의 글은 해방도, 꿈도, 자유도 아니었다.
그날,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예정'자였다.
아름다운 단어들로 치장하고 꽃길을 찾아 나선 '예정'자였다.
이력서를 수십 장, 아니 백장은 넘게 쓰고 제출했던 것 같다. 백번을 넘게 구직을 문을 두드렸으나 면접의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한 번은, 전공과 전혀 무관한 '구매부'에 지원을 했는데 기대도 안 했던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구매부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고 그 결과는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그저, 면접 때 내가 내뱉은 대답들이 너무 바보 같아서 그 순간을 삭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면접에서 모두 탈락하고 나는 조용히 자대 연구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취업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전공은 없었다. 그저 '졸업' 상태로 남아 있을 나의 신분을 걱정했다. 미리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대충 무슨 연구를 하는 곳인지 알아두었다. 연구실 선배들은 이거랑 저거 좀 미리 읽어 보라고 일러주고 갔다.
덕분에 대학원 교수님 면접은 수월하게 끝났다. 대학원 학사지원실로부터 합격이니 등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합격이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이 길이
평생을 꿈꿔온 연구의 시작일 수도 있고
가장 열정적인 시간을 쏟아붓는 마지막 보루일 수도 있는데
나에겐 그저 가고 싶지도, 안 가고 싶지도 않은 몽롱한 계획이었기에
어떤 이의 또렷한 목표를 대하는 또렷하지 않은 내 마음은
비겁했다.
학교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넌 진짜 쓴 맛 좀 봐야 해.
잉크가 얼마 남지 않은 볼펜을 꺼냈다. 뭐라도 나를 절박하게 만들어 괴롭힐 징벌이 필요했기에. 글자가 흐리게 써지니 단어는 완성되지 못한다. 손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쓴다. 비겁한 나의 행적들을 낱낱이 적는다. 혼자 탓하고 혼낸다. 그리고 다시는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일기는 역시 혼자 봐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결국은 자기 위로와 격려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찌질한 하루는 뻔뻔함으로 코팅되어 무사히 기억 저편으로 처리되었다.
나는 비겁한 대학원 트랙을 포기했다. 그리고 수백 번의 이력서를 더 고쳐 쓰고 나서야 겨우 신입 사원이 되었다.
가슴 뛸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노력한 끝에 시작한 첫 취업 생활은 나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다만 처음 하는 일들인지라 실수 투성이었고 결과는 당연히 스스로 기대한 만큼 잘 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힘든 것도, 최악의 직장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아팠다. 어딘가 고픈 마음처럼, 어딘가 아팠다.
아플 때면 몰래 숨어서 글을 썼다. 비겁하고 부끄러운 순간이면 가장 아끼는 노트를 펼쳤다. 아픈 나를 앉히고 아프지 않을 때까지 써 내려가야만 했다.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 선우정아 님의 곡 '도망가자' 중.
노래 영상을 본 어떤 이는, '도망가자'는 제목 뒤에 노랫말들이 결국 '살아가자'여서 와닿는 다고 했다.
내가 술김에 쓴 댓글인가 했다.
도망가는 날이다.
내가 너무 작고 하찮은 날. 그런데 하필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밝은 날. 그래서 숨을 곳이 없는 날은 어디로든 도망가야 한다.
적는다. 그냥 뭐라도 적는다. 거짓이든 뭐든, 쓰는 순간은 쓴 그대로 믿게 되니.
멀리 가지 않았을 뿐, 부지런히 도망가는 중이다.
도망가는 마음은 사실, 너무도 살아 내고 싶은 마음이다.
'나만 아는 비겁함'을 '나니까 쓰는 뻔뻔함'으로 살아 낸다.
장강명 작가가 말했다. 써야 하는 사람은 결국 써야 한다고. 작가가 되는 축복은 글을 써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고.
스스로가 부끄러운 순간마다, 부끄러운 글이 몇 번이나 나를 살렸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던 걸까. 결국 살아가는 힘은 매번 찌질하고 한심한 구덩이에서 불쑥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