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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품 준비 | 작가 노트 ]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소품을 그리고
작품을 키워 작업을 한다.
그러나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순간을 포착해서 큰 그림부터 그리는 스타일이다.
그 감흥은 올 때 안 그리면 지나쳐 버리고
같은 것이 오질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시할 큰 작품들을 마무리 짓고
작은 작품은 쉬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신비롭고도 환상성이 있는
분명히 같은 컬러들이건만,
큰 화면에서 보여주는 색의 느낌이
화면이 작다 보니 나질 않았다.
또 다른 국면을 마주한 것이다.
남도 표현대로 "어째 쓰까나잉~"이란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미학이 아닌 색채학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표면에 보이는 색 면적의 차이 때문이었다.
색채학으로 큰 벽 면적에
슈퍼 그래픽을 그려 본 경험들과
아파트 단지를 컬러 색채 디자인을
현장에서 20년간 해본 경험이
이런 경우에 큰 도움이 될 줄이야!
배우고 경험한 것이 언젠가는 다 쓰인다더니...
그다음은 작은 면적에 양은 적지만
강하게 어필하는 컬러들과
서로 어울리는 컬러 군을 찾는 것이 수순이다.
과감한 색상들을 선정하고 나니
막상 써볼라는 데 내 잠재의식에서 말이 많다.
색을 찾아내고도 내부의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지면 이번 전시에
소품을 출품 못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지연전에 강하다.
일단 붓을 놓고
며칠 밤을 아무것도 안 하고 지새웠다.
방 밖에서 식구들은
밤새서 그림 그리는 줄 알았을 거다.
이런 경우 안 그리고 버티는 것도 그림의 과정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해 녹초가 되었을 즈음,
적들이 잠잠해진 순간이 왔다.
이 때다 하고 용기를 내어 얼른 물감부터 짜 놓았다.
짜 놓고 오래되면 굳어 못 쓰게 되는 물감 특성상
이어서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늘 이런 일을 겪는 법이다.
이번 전시 소품들도 겪을 것을 겪을 만큼 겪고 나왔다.
작품 준비를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왠지 인간미가 있는 사람과 한 잔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