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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pr 27. 2021

비잔틴 미술 (330~1453) A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서양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서양 미술 이야기







비잔틴 미술 (330~1453) A





지리적으로는 지중해를 놓고 보면

로마가 중심이다.

그러나 흑해를 같이 놓고 보면

양쪽 해의 연결 점에 있는 

이스탐블이 중심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서양과 동양 무역의

중심이 그곳이기도 하다.


힘으로 지배하던 시대가 로마이다.

시간이 지나며 도덕과 윤리가

타락한 로마는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정통 교리를 정하였다.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겨

콘스탄티노플이라 개명한다.

이것이 동로마 제국의 시작이다.

동로마 제국을 비잔틴 제국이라 한다.


로마 시대는

로마 공화정의 시작인 BC 509년부터

 2천 년을 유지했다.

그중 천 년 이상을 비잔틴 제국이 차지한다.

역사이래 제일 오래 존속했던 나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2021년 지금의 우리 시대로 본다. 

서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이 지금까지 

세계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가 로마 교황으로 

둔갑해 왔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십자군 전쟁 이후 하도 교묘하게

진행해 와서 눈치 못 챌 만도 하긴 하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또한 그리스 고전 문화를 보존 육성하여

서유럽에 전하였고,

이탈리아 인문주의에도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르네상스의 탄생을 가져온다.


서로마가 멸망한 5세기 이후,

로마 가톨릭은 에수와 성모 마리아 등

성상을 만들어 선교하자

비잔틴 제국은 성상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금지령을 내리며 가톨릭교에 대항해 

그리스 정교로 완전 분리되게 되었다.

이것이 비잔틴 미술이 모자이크가 

주류를 이루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비잔틴 황제는 신정일치를 표방하며

성서 교육용으로 제작되는 성당의

모자이크에 자신과 황후를 

성상화 하여 넣는다.

우상은 안 되고 성상은 된다?

모순이다.




비잔틴-오스만 전쟁(1265~1453) 끝에

로마 가톨릭의 십자군 지원 원정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된다. 

이 전쟁 중에 문화적으로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고전학 연구 학자들이

대거 서유럽으로 망명하고

결국 유럽 르네상스의 새로운 연료가 된다.







비잔틴 양식의 특징

모자이크와 돔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고 회교도들이

성 소피아 대성당 모자이크 벽을

회벽을 칠해 회교도 사원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회칠을 일부 벗겨내는 

복원 작업을 한 상태이다.

누런색 조각들은 돌이나 유리가 아닌

황금이다.


비잔틴 미술의 정수는 

이태리 북부 라벤나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과 

산 비탈레 성당에

보존이 아주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내부의 모든 작품이

모자이크로 되어 있어 문양만이 볼만하다.

문양이라 함은 요즘 디자인 패턴이다.

즉, 비잔틴 미술은 아랍의 영향으로

디자인이 강세였던 것이다.

결론은

건축과 디자인 이상의 것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6세기 건축 양식은

직사각형 복도 나열식인 바실리카 양식이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가운데 큰 돔을 중심으로 한 십자형 양식이다.

이와 같은 십자형 양식은

러시아 교회 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베네치아 중심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이 그 예이다.


중앙의 돔과 건물 밖 회랑에 해당되는 부분의

아취의 미는 건물 전체에 통일감과 우아함을

준다.

성 소피아 성담 외부의 크고 작은 돔의 곡선과 

내부 작은 아취의 둥근 라인은

여유 있고도 거대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외부 하부에서는

그 작은 아취의 멋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중앙의 거대한 돔의 하중을 

사방에서 잡아주느라 볼품은 없지만 

묵직한 건물로 눌러주어야 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전체적으로 산 마르코 성당의

조화로운 미를 따라갈 건축물이 없다.

비잔틴 미술의 절정은 의외로 베네치아에서

완성되어 존재한다.




성 소피아 성당은 거대한 돔 형태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537년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1453년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을

정복한 후 모스크로 개조했다.

터키어 명칭은 '아야 소피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성당은

1934년 터키 공화국 초기에 박물관이 됐다.

그러나 2020년 터키 법원은

박물관 지위를 무효화했다.

이제 다시 모스크가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터키 사법부의 결정에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가톨릭 교황이 가톨릭 성당도 아닌 

그리스 정교 성당이 모스크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렇게 말을 했을까?


성(聖) 말라키 대주교는

자신이 생존했던 12세기 초반부터

가톨릭 마지막 교황에 이르기까지

역대 교황들의 출신지와 특징, 재임 기간,

상징적 의미, 때론 이름까지도 거명하는 등

총 112명의 가톨릭 교황을 예언하였고

성 말라키의 가톨릭 역대 교황 예언은

적중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말라키가 예언한 112명의 가톨릭 교황 중

마지막 교황이다.


교황이 없어도 가톨릭은 존속할 것이다.

다만 말라키 예언대로 된다면,

서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교황과

동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성당이 

같은 시기에 상실된다는 것이 묘하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이스탄불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라벤나, 450년





산 비탈레 성당 내부, 라벤나








성 소피아 대성당, 이스탄불






산 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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