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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20. 2021

연어 핑크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컬러 체험 여행'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컬러 체험 여행





순간 생기는 창조의 빛은

창조의 도구이다.

그 빛은 크리에이터의 의도가 있어야

쓰인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물감을 재료로 써서 그림을 그리듯

빛이 사용되어 창조가 이루어진다. 




크리에이터의 의도란 의식이다.

창조자의 의도는 곧 창조 의식이고

예술 쪽에서의 예술가 의식이다.

미술계에서 "작가 의식"을 운운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예술 작품 감상하는 3대 포인트는 이러하다.


작가 의식

형태 

컬러








마라케시에만 있는 흙색

[연어 핑크]




북아프리카의 독특한 색채 문화는

북으로는 튀니지가 있고

동쪽에는 예멘의 '사라'가 있으며

서쪽에는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핑크 빛 꽃을 피웠다.




마라케시의 도시 컬러는

선명도가 강해서 사진으로는

그 현장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빼놓을 수 없다.


살색이라고 하기에는 붉은 기가 많고

분홍이라 하기에는 더 묵직하고

인디언 핑크라 하기에는 그보다 맑다.

이 경우에는 

실물에 가장 비슷한 것의 이름을 차용해 

컬러 이름이 정해진다.

'연어 핑크'란 네이밍도 그렇게

정해진 이름 이리라.


보석도 아닌 것이 이렇게 맑은 색의 흙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 희귀한 경우이다.




붉은색을 띤 매혹적인 도시, 마라케시는 

붉은 해가 야자수 너머

사막의 저편으로 기울 때,

더욱 선명한 빛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붉은색의 향연에 빠져든다.









모로코의 붉은 진주

마라케시



무와히드 왕조의 강역






이베리아 반도까지 다스렸던

무와히드 칼리파 왕조라는

광대한 제국의 수도가 마라케시였다.


마라케시는 모로코에서 

페스 다음으로 오래된 도시이다. 

1062년 베르베르족 알무와히드 왕조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하여 한때 쇠퇴했다가 

1520년 사드 왕조의 도읍지가 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마라케시는

남부 모로코와 알제리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기점이면서 

북서 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중심지이기에

모로코의 학술과 문화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구시가지를 아랍어로 메디나라고 한다.

메디나도 그때부터 형성되었을 터이니 

족히 천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셈이다. 

마라케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건축이나 

유물은 물론 서민의 주거지도 

대부분 오랜 세월이 쌓인 메디나 안에 있다.


메디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미로이다. 

집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골목은 

두세 사람이 겨우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이고 

그나마 곧은 곳 없이 제멋대로 돌고 꺾였다. 

적의 침입을 지연시키기 위해 

작정하고 미로로 만들었던 것이다.


모로코는 1912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그로 인해 

마라케시 역시 역사적 건축물 외에 

프랑스가 건설한 근대적인 시가지와 

건축물이 적지 않다.

야자수가 늘어선 마라케시의 신시가지가 

'심심한 천국'이라면 

구시가지는 분명 '재미있는 지옥'이다.





마라케시의 메디나는

건물의 바깥벽이 온통 붉은색이어서 

'모로코의 붉은 진주'로 불린다.

어떤 컬러는 와인 색에 가까워

밝은 와인 컬러의 얼큰함도 느껴진다. 

마라케시의 외벽은 칠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 흙 자체가 붉은 계열이라 

구도시 전체가 그렇게 된 것이다.

흙은 한 지역이라 해도 파는 곳과 

깊이에 따라 색이 다르다.

그래서 마라케시의 컬러를

한 색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붉은 계열 색이라 함이 옳을 것이고

다른 지역에 없는 컬러를 대표 컬러로 뽑아

'연어 핑크'라 할 뿐이다.












































 











































마라케시 컬러의 영향



모로코가 1912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1956년 독립할 때까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부 문화와 컬러에 있어서는

거꾸로 프랑스가 영향을 받았다.


그 증거는 남프랑스의 항구 도시들의

컬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의 흙색은 석회암이라 

주로 흰색이나 연회갈색 계통이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 빌딩 컬러들은 컬러풀하다.

특히 연어 핑크색이 주가 되어 그와 잘 어울리는

따뜻한 컬러들이 밝게 칠해져 있다.

지중해 남프랑스나  해안가 항구 도시들은

마라케시의 도시 컬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중 유명한 항구 컬러는 니스 옆 '망통'과 

마르세이유 바로 옆 감춰진 작은 항구 '카시스'이다.




더 나아가서 이웃인 이탈리아 해안가로 가면 

그 색들이 더 진해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바다와 주변 경관과 가옥이 

마을의 유명도를 가늠하지만 

컬러가 한 몫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컬러 해안가 마을들은

따로 정리하기로 한다.








망통







남프랑스의 보물

카시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은

카시스를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파리를 보았으나 카시스를 보지 못한 사람은

‘아직 프랑스를 보지 못했다’라고 말해야 한다.”


문장 한 줄에 꾹꾹 눌러 담은 작가의 자긍심?

저런 찬사는 그럴만한 곳이기에 나온 것이다.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한국으로 치면 부산 같은 곳이다.

마르세이유의 부호들은

번잡스러운 마르세이유에 안 산다.

바로 옆 조그만 항구도시 카시스를 낀

뒤쪽 언덕에 산다.

요트를 정박하기 좋고

근처에 절벽으로 둘러쳐져 감춰진

천혜의 아늑한 해변이 있기 때문이다.




카시스는 깨끗하고 아늑하며 자그마한 항구이다.

그곳을 발견하게 된 것은 

지인이 그곳 출신이라

재혼식을 고향에서 올린다 해서

초대받아 가서이다.

프랑스 결혼식은 밤을 새우며 춤추고 먹고 논다.

그 휴양지 같은 동네 언덕에 옛집을 잡아줘서

결혼식을 온 건지 휴가를 온 건지 모르게 지냈다.

다음날 지인 가족들과 방돌 호텔에서

유명한 그곳 술인 방돌 와인에 야외식도 했다.

방돌 와인은 시원하게 미소 짓는,

건강미가 있는 웨이트리스가 따라주는데

그녀의 이미지에 걸맞는 풍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여인들은 방돌 와인을 두고

라틴계의 거친 남성이 비단 가운을 걸치고

입맞춤을 즐기고 있다고 묘사한다.




결혼식 후로는, 간 김에 남프랑스 일대를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갈 곳도 볼 것도 많은 곳이었다.

마르세이유에선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로 꼽는

해산물탕 부야베스를 맛보았다.

우리나라 생선 매운탕만 못했다.










카시스 항구








카시스 비치





부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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