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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14. 2021

고귀함의 표상[코발트블루]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컬러 체험 여행'




고귀함의 표상

[코발트블루]







이슬람에서 코발트블루가 빚어내는 청색은 

고귀함과 고상함의 표상이다. 

알라를 모시는 모스크나 왕궁의 중요한 문, 

내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카 쪽의 벽면은 

청색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건조하고 뜨거운 대지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파란색은 오아시스를 의미하기도 했다.




코발트란 물질은

쇠보다 무겁고 단단한 회백색의 금속 가루로,

유리 착색의 도료와 도금 원료로 쓰이고

강철을 합금하는데 쓰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코발트블루 물감은 

파란색 물감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코발트를 알루미늄과 결합한 산화물이다.




페르시아의 청색의 시작은

산화코발트 안료 원산지인 카샨으로부터 이다. 

페르시아에서는 13세기 이전부터 

백토에 푸른색 산화코발트 블루 안료를 칠한 

도기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코발트블루를 중국에서 회청(回靑) 

혹은 회회청(回回靑)이라는 부른다.

여기서 회회는 이슬람을 지칭하는 한자어다

카샨의 코발트블루 안료는

중국에 들어가 ‘청화백자'가 된다. 

그리고 1457년(세조 3년) 

명나라에서 회청이 수입되면서 

조선에서도 제작이 시작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자기로 만든 색채 타일을 

‘아줄레주(Azolejo)’라 부른다.

한편 페르시아로부터 회청 안료와 

도자 제조법을 받아들인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아줄레주를 특유의 문화로 정착시켰다. 

따라서 중국과 조선의 청화백자와 

스페인의 아줄레주는 이복형제인 셈이고

원조는 페르시아 카샨이다.


페르시아는

동아시아처럼 고급 자기를 만들 수 없었고 

무더위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공간을 시원하게 해주는 타일이 발달했다

또 회청이 너무 비싸 

자기 제작에 소량밖에 사용하지 못한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페르시아인들과 이베리아 반도의 무어인들은 

코발트를 안료로 쓴 타일을 대량으로 제작해 

모스크와 왕궁을 치장했다.




세계 건축 문화뿐만 아니라

카펫과 타일과 도자기에 쓰이는 안료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가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유럽을 뒤흔든

청화백자(靑華白磁)



코발트블루 안료 원석은 

이란의 고원 카샨이 원산지다. 

카샨은 실크로드가 지나는 페르시아의 길목에 있다. 

카샨에서 코발트블루 원석이

대상(大商)의 낙타에 실려 

수천 리를 건너 중국 징더전에 이른다. 


.


청화백자는 

중국 징더전의 가오링(高嶺) 산에서 채굴한 

고령토로 빚은 자기에 청화를 칠해 구운 것이다. 

고령토 원석을 부수어 입자를 만들고 

물에 걸러 여러 번 수비(水飛)한 다음 반죽을 만든다. 

고령토는 카오린 성분으로 

석영, 점토, 장석이 골고루 배합된 흙이다. 

석영은 자기의 뼈가 되고 

점토는 살이 되며 

장석은 이 둘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코발트 원석은 돌덩어리로 

이것을 잘게 부수고 곱게 갈아 

물에 녹여 안료로 쓴다. 

입자로 된 코발트는 진한 회색이지만 

온도가 섭씨 1200도 이상 올라가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이것이 청화다.


빚어낸 초벌구이 자기에 

코발트(청화)로 무늬를 그리고 

잡티가 튀지 않도록 상자 같은 갑발(匣鉢)을 씌워 

섭씨 125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소성하면 

백색 피부에 짙은 코발트블루를 가진 

청화백자가 탄생한다. 




청화는 고령토로 빚은 도자의 문양과 그림으로 되살아나 

중국 최고의 하이테크 제품이 된다. 

순백의 도자에 눈이 부신 청색 안료는 

명, 청의 황실뿐 아니라 유럽의 황실을 뒤흔들었다. 

도자기 하나로 유럽의 은화를 싹쓸이하고 

중국을 천하의 나라로 만든 명품이 청화백자다. 




고령토가 섭씨 1200도를 넘으면 

자화가 이루어져 흙은 완전히 녹아 

세라믹으로 성분이 바뀐다. 

고온에서 소성된 자기일수록 쇳소리가 난다. 

흙 성분은 완전히 사라져 

자기의 내부는 공기 입자가 사라지고 단단해진다. 

세라믹은  단단한 소재로 

현대 산업의 중요한 신소재다. 

고온에서 견디는 세라믹의 성질 때문에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에 진입해 낙하할 때 

공기 중 산소와 부딪쳐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차단하는 데 사용된다.


일본 교세라의 주방용 세라믹 칼도 

세라믹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좋은 예다. 

강철보다 더 강한 자기의 성질은 

떨어트리면 부서지는 단점이 있지만 

유럽의 황실에서는 이전의 금은기 생활용품에서 

자기의 새로운 모습에 완전히 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럽에서는 

백자를 만들 수 없었다. 

백자의 흙 성분인 카오린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황제들은 연금술사를 불러 

백자를 만들어내라는 주문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1710년 독일 드레스덴 작센 왕국의 

황제 아우구스 2세의 명을 받은 

연금술사 베트거에 의해 

백자 만드는 비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고령토였다. 


그 결과 독일 마이센은 

명품 마이센 자기를 만들기 시작해 

19세기 황금기를 거쳐 

오늘날 세계 도자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마이센의 성공은 네덜란드의 델프트 자기와 

프랑스의 세브르 자기, 영국의 본차이나까지 

유럽 자기의 황금기를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일본은 임진왜란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노력으로 

1630년대부터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황실 도자기를 

주문, 생산하는 이마리 자기를 탄생시켰다. 

이마리 자기는 징더전의 청화백자에 

금과 색을 입혀 다시 구워내 더욱 화려해졌다. 

값도 중국 자기보다 비싸 

에도시대 일본 경제를 이끄는 중추가 됐다. 

유럽에서, 특히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일본 열풍이 분다.

그 결과 네덜란드 델프트 자기와 

프랑스 인상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단정한 모습에서 

우리네 담백한 숨결을 느낀다. 

당시 청화의 값이 금값이었다. 

서민의 밥상 위에 청화백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기야 

아랍에서 중앙아시아, 페르시아를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오면서 

여러 나라의 세관과 운반에 따른 인건비, 

목숨을 건 위험수당, 

거기에 도적들의 약탈 보험금까지 

모두 감안한다면 동쪽 끝 조선 땅까지 

얼마나 먼 여행이었을까. 

금쪽같은 청화백자의 귀한 몸은 

가히 왕실용으로밖에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그나마 조선 전기는 왕실 자기 역시 대부분 

순백자로 청화의 흔적은 찾을 길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청화의 유입이 늘어났고 

백자에 청화 찍듯 담백하게 그려낸 자기가 

사대부와 서민의 눈 맛을 돋우었다.


조선 후기 한강 금사리나 분원에서 구워낸 

왕실 청화백자의 귀태는 청화의 화려함이 아니라 

단아하고 품위 있는 정갈함에 있다. 

징더전 청화백자의 눈부신 화려함은

너무 눈을 부시게 한다. 정감이 들 여지가 없다.

과도한 화려함을 볼 줄 아는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우리네 수준 높은 조선 백자를 보아온 덕이다.

세계 도자기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작품은

조선 백자였던 것이다.




현재 유럽 자기의 최고인

덴마크 자기 회사 '로열 코펜하겐',

그 원동력은 유럽을 뒤흔든 청화백자였으며

그 뒤에는 카샨의 코발트블루 안료가 있었다.


징더전 청화백자는 

내륙의 수로를 통해 배편으로 상하이를 거쳐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일부는 실크로드의 낙타 등에 실려 

중앙아시아 고원과 사막을 건넜다. 

유럽 황실과 이슬람 술탄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그릇의 모양과 문양과 

디자인을 주문했다. 

청화백자에 이슬람어가 적혀 있고, 

유럽 황실의 은기 형태가 등장했다. 


고려청자도 마찬가지였다.

동으로 만든 중국 정병을 

그대로 고려자기로 만든 것도 있었다.

명대 초기 징더전 청화백자의 문양은 

이슬람의 아라베스크 문양인 

당초문이 대부분이다. 

이슬람에서 다른 형태를 금해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이 

풀줄기와 꽃잎 문양이다. 

화투의 흑싸리 같은 이파리와 줄기에 

포도, 도토리, 무화과, 복숭아와 같은 열매와 

모란, 국화, 연꽃 등 문양으로 

쓸 수 있는 화려함을 총동원했다. 

여기에 별빛처럼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은 

이슬람의 전통적 문양인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본의 전통 문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현란한 별빛 문양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문양의 정점이다. 

당초문은 이슬람 상인들이 

징더전의 도공에게 주문 생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징더전 청화백자의 문양이 됐다.




도자기는 물건을 담는 물건이다. 

도자기의 본래 용도는 서서히 변해 

도자기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됐다.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미적 관점에서는 

투박하고 밋밋한, 조금 덜 떨어진 듯한 

자연미의 조선의 막사발이나 백자가 

요란한 중국의 청화백자보다 낫다.

단순하고 담백한 품위를 간직한 

조선 자기 말이다.








<베이징 고궁 박물관의 청화 백자들>




청화백자 당초 모란 문병, 높이 35cm, 청 강희년 제





청화백자 당초연화문 접시, 높이 6.7cm 지름 15cm, 청 강희년 제





청화백자 봉화문 항아리, 높이 54cm, 청 강희년 제





청화백자 영락문 병, 높이 23.2cm, 청 강희년 제





청화백자 용봉문 합, 높이 16.5cm, 청 강희년 제





청화백자 절지화문 대접, 지름 22.3cm, 명 선덕년제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재료 

코발트


코발트 원석







한때, 

인도의 후추와 향신료 무역으로 

세계의 역사가 바뀐 적이 있었다.


왕년에, 

페르시아의 코발트를 원료로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가 

세계 무역 시장을 휩쓴 시절도 있었다.


이제, 

코발트는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첨단 제품들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다.




코발트 때문에 요즘 들어

글로벌 산업계가 골치를 앓고 있다.

지구의 지각에 약 0.0025%만 존재하고 있어서

워낙 희소가치가 있는 물질인 데다가,

전 세계 코발트의 절반 정도가 매장되어 있는

콩고 민주공화국이 이중관세를 매기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치기 때문이다.

코발트 매장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콩고가

내전 등 정치적 상황이 불안하다.

그렇다면 아예 코발트 수요량을 

줄이는 것은 어떨까?

이에 따라 관련 업계는 

코발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코발트 확보 및 대체 물질 개발 연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노트북용 배터리에 사용되는

저(低) 코발트 배터리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노트북에는 코발트 함량이 100%인

배터리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코발트 비중이 70% 정도로 줄이면  

제조단가를 내릴 수 있기에

가격 경쟁력 확보에도 유리하다.


삼성 SDI는 코발트 비율을 줄이고도

한 번의 충전만으로도 더 멀리 가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업체인

일본의 파나소닉은 

이미 코발트 사용량을 현저히 줄인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소닉은 더 나아가 코발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배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파나소닉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세계 최고의 배터리 생산국인 한국도 

앞으로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 청화백자가

세계 무역 시장을 휩쓸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 4차 산업 시대에는 한국이 그 위치에 있다.

세계에 제품 공급하는 나라가 바뀌었고

코발트 원료를 공급하는 나라도

페르시아에서 콩고로 바뀌었다.

그러나 코발트는 안 바뀌었다.


희귀한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대접받는 법이다.

그것을 '희소가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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